정부와 은행 관계자들은 현대가 자구약속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면서 현대의 자구의지에 대해 공공연히 의구심을 표시해온지 오래됐다.

현대도 마찬가지로 정부와 채권단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있다.

현대사태가 질질끄는 데는 이런 신경전도 크게 작용하고있다.

이를테면 정부의 추가자구 촉구에 대해 현대의 반응은 이런 식이다.

"출자전환이나 법정관리같은, 결국 경영권 박탈을 의미하는 얘기들을 수없이 흘리는 한편으로 오너 일가의 사재를 내놓으라고 자꾸 재촉하는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사재 출자란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하는 것인데 경영권 보장이 극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어느 오너가 선뜻 나서겠느냐는 얘기다.

그는 "채권단은 차입금 만기연장을 해준다지만 제2금융권은 현금 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사재 출자를 해도 그 자금을 금융기관에서 회수해갈 것이 뻔한데 아무리 자금을 넣더라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것이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의 주선으로 지난 3일 오전 정 전 명예회장이 입원해 있는 서울 중앙병원에서 가질 예정이었던 친족 모임이 불발된 데는 이런 정서가 깔려있다.

현대 방계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모태인 만큼 형제들이 도움을 줘야 한다는 정부의 요구는 다분히 일반여론을 의식한 발상"이라면서 "시민단체라면 모를까 ''기업구조조정''을 추진중인 정부가 공공연히 할 얘기는 아니지않느냐"고 정부의 논리 자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대 계열사의 한 관계자도 "자칫현대그룹은 물론 방계그룹까지 부실로 몰아넣을 수 있는 위험한 해법을 마치 현대가족들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즉시 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현대그룹 관계사 직원들은 이런식으로 할말이 너무 많다.

하지만 공식적으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현대건설의 한 실무자는 "정부와 채권단이 속시원하게 오너 사재를 최대한 털어서 은행손실을 줄일수 있는 데까지 줄인 다음 현대건설은 문을 닫게 할 것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면서 지친 표정을 지었다.

문희수 산업부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