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맡긴지 한달도 안됐어요. 황당할 뿐입니다. 고금리로 예금을 유치한 속셈은 다른데 있었더군요. 겁없는 벤처기업인의 주머니돈으로 전락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동방상호신용금고가 대주주에게 거액을 불법대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역삼동 동방금고에는 휴일인 22일 다급해진 예금자 50여명이 몰려들었다.

지난달 1년짜리 정기예금에 7천2백만원을 맡겼다는 정연호(50)씨는 "선착순 1천명에게 연 11.1%의 높은 금리를 준다는 홍보전단을 보고 예금을 들었다가 낭패를 봤다"며 난감해 했다.

그는 "예금자들이 어젯밤 동방금고 사무실에서 현금이 든 금고를 지키며 밤을 지샜다"며 "현금이 남아 있는데도 직원들이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고 흥분했다.

동방금고 대주주인 정현준(34)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이 일으킨 금융사고는 일부 ''허울좋은 벤처''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 사건이다.

무분별한 사업 확장의 도구로 금융회사를 악용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한경이 지난 4월 ''벤처 금융문어발 심각(4월8일자 1면)''이란 기사를 보도하며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지난해부터 정보통신 벤처업체들 사이에 불기 시작한 금융회사 인수붐은 분명 벤처의 정도에서 벗어난 일이다.

기술개발에 전력을 쏟아야할 벤처기업이 금융회사를 ''사(私)금고''로 끼고 사업확장에만 몰두해서는 곤란하다.

정 사장이 자신이 대주주인 동방금고와 인천 대신금고에서 6백80억원대의 거금을 불법대출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같은 걱정은 결코 기우가 아님이 드러났다.

이번 사건은 신용금고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업계는 ''저축은행''으로 이름이 바뀌고 업무영역도 확대된다는 소식에 들떠 있었지만 이 사건 탓에 찬바람을 맞게 됐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대주주에 대한 대출과 장외주식 투자 등 불법행위가 공공연하다는 소문을 확인시켜준 셈이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의 한 금고사장은 "앞으로 누가 안심하고 금고에 돈을 맡기려 하겠느냐"고 푸념했다.

겁없는 벤처기업인의 허황된 욕심이 애꿎은 피해자들만 낳고 있다.

박해영 경제부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