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철저히 조사해야 했다.그랬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걸…"

지난 9월18일,도쿄 주오구(區)에 있는 브리지스톤파이어스톤(BFS) 본사 9층 중역회의실.

가이자키 요이치로 사장은 회한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가 말하는 ''그때''란 4년 전인 1996년.

그해 6월,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포드의 ''익스플로러''가 뒤집어지면서 차에 타고 있던 한 지역방송국 기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역방송은 그 차에 장착됐던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외피가 벗겨진 게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당황한 파이어스톤은 휴스턴시에서 무료점검 특별행사를 여는 등 이벤트 공세로 펑크난 이미지를 땜질했다.

미국 파이어스톤 모회사인 일본 BFS의 가이자키 사장에게도 이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왔다.

''타이어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 보고서는 간결 명약했다.

가이자키 사장은 이 말을 액면그대로 믿었다.

그것이 뼈아픈 실수였다.

BFS는 그 후에도 또 한번 위기를 사전 진압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휴스턴 사고 2년 뒤인 98년,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익스플로러의 전복사고가 재발했다.

원인은 휴스턴때와 똑같았다.

하지만 BFS와 포드의 합동조사단이 내린 결론은 ''기후 탓''이었다.

사막에서 쉽게 달릴 수 있도록 타이어의 공기압력을 낮춰 놓았는데 그 상태로 일반도로를 달리다 보니 외피가 벗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또 ''보고(報告) 라인의 동맥경화증''이 발생했다.

미국 자회사의 사고 담당자가 "속속들이 알렸다간 일만 복잡해진다"며 일본 본사에 상세한 보고를 하지 않았다.

일본 재계의 ''글로벌 경영''우등생으로 통하는 BFS도 해외 자회사의 누수현상을 막지 못했다.

BFS의 관리실패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위기발생 이후에도 포드의 페이스에 휘둘렸다.

리콜발표 다음날인 8월10일,가이자키 사장은 미국 미시간주의 포드 본사로 날아갔다.

포드의 자크 나세르 사장은 "원인규명 홍보활동 청문회 등 모든 일에서 함께 보조를 맞추자"고 제안했고 가이자키 사장도 동의했다.

그러나 일본에 돌아와 보니 사정은 딴판이었다.

포드는 미국언론에 일방적인 정보를 흘렸다.

연일 포드에 유리하고 BFS에는 불리한 뉴스만 지면의 톱을 장식했다.

리스크의 태동부터 발생 이후까지 그야말로 ''완전실패''였다.

가이자키 사장의 하소연은 어느 최고경영자(CEO)나 귀담아 들을 만한 교훈이다.

"매출이나 이익 같은 숫자는 내 귀에 즉각 들어온다.하지만 사고나 소송 같은 악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지난 88년 휘청이던 미국 파이어스톤을 사들여 든든한 국제화의 발판으로 활용했던 일본 브리지스톤.

그러나 미국 자회사의 ''위기 은폐병''으로 글로벌경영의 모범생은 막대한 경영손실과 추락한 기업이미지로 얼룩져 있다.

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