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29일 오전 민주당 내 개혁성향 의원들의 모임인 ''열린정치포럼'' 초청 강연에서 현 경제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거시지표 호전에 매달리지 말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벌 개혁론자이면서 지난 8월 개각 당시 재경부장관 물망에 유력하게 올랐던 김 전 수석은 이날 "경제 관료들이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 등 거시지표가 호전되기를 기대하면서 구조조정에 늑장을 부리고 있으며 정책의 일관성 부재로 시장의 불신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경제관료들이 외환위기 극복을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유가안정 △증권시장으로의 외자 유입 △성공사례가 필요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의 적극적 지원 등 외부요인으로 성과가 나온 것이라며 정부의 ''자만''을 경계했다.

이와 함께 한 두달 내에 구조조정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이 오히려 시장의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너무 말을 많이 해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줬다는 견해도 제시했다.

김 전 수석은 "경제상황을 좋은 말로 포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우리 경제의 현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협조를 요청해 구조조정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경제현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식도 문제삼았다.

그는 "정치권과 경제 운영주체는 명백히 구별돼야 하며 금융지주회사법 등이 통과되지 않아서 구조조정이 늦어진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며 "구조조정 추진에는 경제 운영주체의 확고한 의지와 자주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면서 정치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내년까지의 구조조정 계획을 철저히 수립해 확고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 금융불신의 근본원인은 실물경제의 부실에 있으므로 금융기관 지원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워크아웃 기업 등의 생사를 분명하게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밖에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불가피한 만큼 구조조정의 한계와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 놓고 실현 가능한 과제를 우선 추진한 뒤 남은 과제는 차기정권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난 후 민주당 신기남 제3정조위원장은 "여당 의원으로서 진지하게 경청할 부분이 많았고 공감도 했다"며 "여권 내부에서조차 개혁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은데 자세를 다시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