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들이 신산업정책을 서로 관장하려고 싸우는 것은 고질적인 ''자리만들기''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같은 폐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들어 그 정도가 극심해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작은정부''가 세계적인 대세여서 기존 업무만으론 부처조직이나 인원, 승진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정부부처들에 팽배해지면서 ''신산업쟁탈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세계적인 일류기업들과 ''분초''를 다투면서 경쟁을 해야 하는 전자상거래 바이오 등 첨단분야 기업들이 부처들의 철밥통쟁탈전에 휘둘리는 바람에 연구개발과 영업에 지장을 받고 있는 실정이어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산업기술이 첨단화 복합화되는데도 정부 행정조직은 이런 변화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산업정책관련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개편돼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바이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바이오의 경우 생명공학 전자.정보기술 환경 등 복합적인 기술이 동원되 때문에 현재 우리 정부 조직에선 3-4개 부처들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수 밖에 없다"고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로인해 관련부처들은 저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명분을 만들어 서로 관장하겠다고 나서는 실정이다.

이 바람에 같은 산업을 놓고 부처마다 그럴싸한 명분을 살린 정책자금이나 포상제도를 남발하고 업계는 유관부처 틈바구니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부작용이 겹치고 있다.

분야별 상세 실태를 알아본다.

◆ 정보통신/전자상거래 = 중견 정보통신업체인 S사 관계자는 "업무협의차 정부 부처를 방문하려면 산자부와 정통부중 어느 곳을 가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일부 벤처기업들은 두 부처의 정책 혼선을 틈타 지원자금을 교묘하게 이중으로 타내는 사례도 있다"고 털어놨다.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가 차세대 국가 주력산업으로 떠오른 IT산업을 놓고 벌이는 ''밥그릇 싸움''은 정책자금 확보전으로 이어진다.

업계를 유도할 미끼가 있어야 말발이 선다는 것을 공무원들이 잘 알기 때문.

정통부는 지난 7월 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정보화촉진기금 5백억원을 포함해 1천5백억원 규모의 펀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러자 산자부도 8월 벤처지원자금 5천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IT업계 관계자들은 두 부처의 사업에서 △IT표준 제정 △핵심기술 개발 프로젝트 △전자화폐 포럼 △벤처단지 조성△쇼핑몰 인증제 등 10여개가 중복됐다고 지적했다.

◆ 바이오 = 21세기의 대표적인 지식기반산업으로 꼽히는 생명공학의 관련 법 제정을 둘러싸고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넉달째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이다 최근에야 교통정리를 끝냈다.

산자부는 지난달 입법예고한 ''유전자 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에서 유전자변형 생물체를 수입하거나 생산하려면 해당 생물체에 대한 위해성 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한 뒤 품목별 소관부처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이 법안을 보고 과기부가 "산자부가 부처간 협의도 끝나지 않은 법안을 서둘러 입법예고하는 등 생명산업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한다"며 발끈했다.

지난 1일 경제장관조정회의에서 가까스로 두 부처가 법률안 문구수정에 합의했지만 국제협약에 따른 국내 이행법을 제정하는 ''부처이기주의''로 시간을 낭비했다고 해당 부처 관계자들도 실토할 정도다.

◆ 게임.물류 = 인터넷망의 확충으로 황금기를 맞은 게임산업과 물류사업도 정부부처의 밥그릇 싸움과 중복투자로 관련업계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문화부는 정통부 및 산자부와 게임산업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알력 끝에 지난해 2월 게임종합지원센터를 세우면서 게임산업의 주무부처로서 입지를 굳히려고 했다.

그러나 산자부 산하 중기청이 지난달말 한국전자게임산업협동조합과 한국게임개발협회 설립인가를 내주면서 문화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물류 관련 국가기관망만 해도 지난 96년 건교부가 한국통신과 한국물류정보통신을 전담사업자로 지정, 가장 먼저 착수한 ''첨단운송정보시스템(CVO)'' 사업을 비롯 △한국무역정보통신의 통관.상역망△데이콤의 유통망 △한국물류정보통신(KLNET)의 물류망 등 4개.

이들 물류망은 서비스가 중복되고 있으며 국가표준서식 적용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업계는 지적했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