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업체로 스카우트된 대기업 경영자들, 이름값 하고 있을까"

미국의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천은 최신호(9월4일자)에서 포천 선정 5백대기업 경영자중 닷컴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이직한 사람들이 이름값을 못하고 고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기업에서 익힌 관행대로 회사를 경영하다가 수익감소, 주가하락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CEO 또한 "노는 물"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진데서 오는 괴리감에다 새로운 경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 방식을 고집하다 기존 경영자들과 심한 마찰을 겪는 경우도 흔하다.

요리사이트 푸드닷컴은 리처드 프랭크 디즈니TV 회장을 CEO로 앉힌 후 맥도널드로부터 8천만달러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프랭크 회장은 푸드닷컴에서는 경영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30년간 오락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지만 방문자수가 늘지 않자 고심 끝에 "기자회견을 해보자"고 제안했다가 임원들의 눈총을 샀다.

대기업 홍보경험이 신생업체에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업체 i캐스트의 CEO로 변신한 NBC네트워크의 닐 브라운 사장.

그는 i캐스트의 데이비드 웨더럴 회장과 충돌만 계속하다가 1년만에 퇴출당했다.

소프트웨어 및 금융서비스업체 인튜이트의 CEO로 있다가 온라인은행 X닷컴으로 옮긴 윌리엄 해리스는 대기업에서 하던 대로 조직을 세분화하고 잦은 전략회의를 열다가 이사회로부터 해고당했다.

방송서비스 업체 포인트캐스트로 이직한 퍼시픽 벨의 CEO 데이비드 도먼은 텔코 컨소시엄과의 사업협상을 7개월간 끌다가 회사의 현금을 바닥낸 케이스.

포인트캐스트는 결국 전체 투자금의 10분의 1 수준인 7백만달러에 매각됐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기업식 경영을 신생기업에 그대로 주입시키려 했다는 것.

예일대학의 경영학 교수인 폴 브래큰은 "닷컴의 특징은 구조가 없다는 것(structureless structure)"이라고 꼬집었다.

조직의 유동성을 장점으로 살리지 못하고 대기업처럼 세부조직으로 나눠 체계화시키려 해선 안된다는 비판이다.

대기업과 닷컴은 홍보자료를 언제 돌려야 하는가부터 사업전략과 경영방식이 판이하다.

닷컴에서 실패를 경험한 대기업 출신 경영자들은 "대기업에서 보낸 과거를 완전히 잊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포천이 꼽은 바람직한 성공케이스는 팀 쿠글 야후 CEO다.

그의 성공원인중 하나는 대기업 경영 경험이 없다는 것.

중소 기술업체에서 야후로 옮긴 쿠글은 "(대기업식) 명령과 지배의 문화는 닷컴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사결정은 수평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다.

대기업 출신으로 성공적으로 닷컴문화에 적응한 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완구회사 해스브로 출신인 멕 휘트먼은 갓 태어난 e베이를 세계적인 온라인 경매업체로 부상시켰다.

e베이는 휘트먼을 영입한 2년만에 분기실적이 9백만달러에서 9천7백만으로 뛰었다.

최근분기 수익도 1천1백60만달러로 늘어나는 등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그의 성공은 대기업 경영 문화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은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경영신념이 강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