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의 근간인 제조업들이 대거 해외다국적 기업들에 넘어가는 것은 외환위기로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맞이했을 때 이미 예견됐었지만 그 속도나 규모가 예상을 앞지르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이 제조업의 대외개방태세를 완비해 놓은 상황이라면 전혀 문제될게 없다.

하지만 그런 준비도 없이 외국회사들이 무더기로 한국제조업체를 급인수할 경우 국내산업은 외부변수에 크게 영향받는 취약한 구조로 변질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외자유치나 M&A는 글로벌 경제의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최근 기업매각은 해외 메이저의 막강한 자금력에 일방적으로 몰리는 양상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산업정책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자본제휴 협상 역시 상호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쟁력 약화와 외부환경의 변화 등 "타의"에 의해 강요되고 있는 양상을 띠고있다.

전후방 산업효과가 가장 크다는 국내 자동차업계는 포드 르노 다임러크라슬러에 의해 분할됐고 대형 자동차 부품업체는 현대정공을 제외하고 모조리 외국 메이저들의 차지가 됐다.

이찬근 인천대교수는 "국내 제조업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영향력 증대는 우려할만한 상황"이라며 "국제금융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하청생산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자동차 =연초 삼성자동차가 르노로 인수된데 이어 대우자동차는 포드자동차로의 매각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대자동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지분 10%를 넘겨줬다.

다임러에 인수된 미쓰비시 지분을 포함할 경우 현대에 대한 다임러의 지분 영향력은 15%에 육박한다.

결국 국내 시장은 다임러 포드 르노에 의해 분할되는 처지에 놓였다.

<> 자동차 부품 =IMF 사태이후 50여개의 중견업체들이 무더기로 넘어갔다.

만도기계는 독일 와브코, 미국 깁스, 프랑스 발레오, 스위스 UBS캐피털에 분할 매각됐고 한라공조와 덕양산업은 포드 계열인 비스티온에 팔렸다.

케피코는 보쉬-미쓰비스에, 모스트와 한국보쉬기전은 보쉬에, 한국 GKN은 영국 GKN에 각각 경영권이 넘어갔다.

<> 중공업 =삼성중공업의 기계부문과 중전기부문이 각각 볼보와 클라크에 매각됐다.

한국중공업은 올 하반기중 GE, BNFL 등 해외업체에 20% 안팎의 지분을 내줄 계획이다.

또 대우중공업에서 분할 예정인 대우종합기계와 대우조선도 채권단의 지분(출자전환후)이 각각 70% 이상이어서 대우차처럼 국제 입찰로 처리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 정유 =SK(주)를 제외한 대형업체들이 모두 메이저들의 "우산"속에 편입됐다.

LG가 칼텍스와 50대 50 합작을 한데 이어 S-oil(옛 쌍용정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회사인 아람코에 팔렸다.

대주주였던 쌍용양회는 쌍용정유 지분 28.4%와 쌍용정유 공동경영권을 현금 1천억원과 부채 8천억원 양도 등 총 9천억원에 매각했다.

현대정유의 경영권은 합작선인 아랍에미리트 IPIC(국제석유투자회사)로 넘어갔다.

<> 제지 =P&G가 쌍용제지를 인수한데 이어 국내 신문용지의 절반을 공급하던 한솔제지는 신문용지사업 지분 66%를 노르웨이 노르스케스코그와 캐나다 아비티비에 넘겼다.

한라펄프제지는 미국 보워터사에 완전 매각됐다.

이에 앞서 팝코(본사 싱가포르)사가 한솔제지의 전주공장을 인수, 팝코전주를 설립했다.

이로써 국내 신문용지시장의 73% 이상이 외국업체로 넘어갔다.

<> 알루미늄 =알루미늄 압연재 시장은 캐나다 알칸사가 대한전선 알루미늄사업부를 인수한데 이어 미국의 알코아사가 국내 최대 알루미늄압연재 생산업체인 대한알루미늄을 인수, 80%이상 시장을 잠식했다.

조일알미늄도 유럽계 회사와의 제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음료.주류 =지난 4월 해태음료가 일본 히카리인쇄(51%)-롯데(19,9%)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프리미엄 위스키 "윈저" 등을 생산하는 두산씨그램은 캐나다 씨그램사에 팔렸고 진로 위스키사업부문은 영국의 얼라이드 도멕사에 넘어갔다.

이에 따라 연간 6천억~7천억원 규모의 국내 양주시장은 외국업체들이 움켜쥐었다.

맥주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벨기에 인터부루사가 OB맥주 지분의 절반을 매입했고 하이트맥주도 덴마크 칼스버그사에 16%의 지분을 양도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