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방북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전자사업을 중심으로 대북경협을 공식적으로 본격화하겠다는 의지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은 지난 92년 북한에서 섬유 임가공사업을 시작한 이후 대북 경협사업에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해왔다.

90년중반부터 삼성 대북경협사무국을 통해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긴밀히 접촉하면서도 선뜻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북측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북한방문을 요청하며 삼성의 대규모 투자를 원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은 3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은 북한으로부터 백두산 및 묘향산 등의 관광개발사업추진을 요청받았지만 이를 추진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북한이 삼성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삼성이 전자부문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투자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대북 투자사업에 지극히 보수적인 삼성이 대규모 북한투자에 나설 경우 외국 자본 유치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란 북측 나름의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최근 들어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북측과 긴밀한 실무협의를 가져온 삼성은 올들어 대북사업을 강화했다.

지난 3월 평양에 전자조립공장을 세우고 컬러TV 및 전화기조립사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오디오 제품 양산에 들어갔다.

삼성관계자는 "조립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북한에 가져가 제품을 조립한 후 우리나라에 반입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금년중 TV 2만대,전화기 24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 북한의 조선컴퓨터와 공동으로 "소프트웨어 공동 개발센터"를 개설하고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북측은 연구인력을 대고 삼성은 개발비(73만달러)를 부담하는 방식의 남북경협사업이다.

이에 앞서 삼성은 자사 TV 1백대를 평양에 있는 고려호텔 등 북한 공공장소에 "아태 삼성"브랜드를 부착해 설치했다.

삼성측은 민간 기업 브랜드가 북한내 공공장소에 설치되기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교류를 통해 치밀하게 북한 투자를 검토해온 삼성은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민간 경협물꼬가 터질 것으로 보고 조만간 북한내 전자단지 건설사업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김태호 부장은 "삼성이 북한내 건립을 추진하는 전자단지가 완공되면 3만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3조이상의 매출을 거둘 수 있는 규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은 전자단지가 제대로 가동하려면 육로를 통한 수송체계가 확보되고 도로 전력 용수 등 사회간접자본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북측과 합의해야 할 사항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북 경협무드를 타고 북측과 원만한 타협점을 찾게 되면 이건희 회장의 방북도 예상보다 앞당겨질 전망이다.

이익원 기자 iklee@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