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치른 13일 대부분의 관료들은 휴식을 취했다.

과천 정부 제2종합청사도 조용했다.

총선 후보들 못지않게 관료들도 심신이 지쳤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장관들은 나라빚 4백조원으로 시작된 한나라당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혼쭐이 났다.

김대중 대통령한테 심한 질책까지 받았으니 선거병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숱한 경제과제를 선거 후로 미뤘다는 비난도 많이 샀다.

그래서 이날 만은 조용하게 지낸 모양이다.

대부분의 부처가 선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됨직한 정책을 발표하느라 애를 썼다.

장관들은 하루에도 몇차례식 회의에 불려나갔다.

하루가 멀다하고 선심성 정책이 쏟아졌다.

중산.서민층 재산형성 지원을 위한 세제 혜택과 소득분배 개선, 고용 안정, 사회안전망 확충 방안 등을 재탕삼탕 발표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위기극복 과정에 있는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들이다.

사회보장 확충이나 서민층 세제 혜택이 나쁘다는건 아니다.

하지만 국가 채무가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에서 세금을 적게 거두고 많이 지출하려는 정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민들에게도 조금만 더 고통을 참자라고 하는게 훨씬 진실한 모습에 가깝다.

해야 될 일은 산적해 있다.

천문학적 세금이 투입됐으나 경영을 책임질 은행장마저 선임하지 못해 서울은행은 벌써 몇달째 표류중이다.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금융기관 추가합병 등 총선후 강제적인 금융구조조정이 없다며 금융인들의 불안심리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썼지만 가장 시급한 과제가 금융구조조정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가계나 개인들도 선거로 느슨해진 마음가짐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집단이기주의에 근거한 제몫 챙기기보다는 경제위기 초기처럼 고통을 서로 분담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외국 언론들은 총선후 한국의 개혁 의지가 퇴색되는게 아닌가 우려하는 글들을 많이 실었다.

총선 결과에 따라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온 정치 경제개혁이 달라질 수 있다고 걱정했었다.

경제위기 3년째로 집권 2기에 접어든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파티는 끝났지만 경제는 더 바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강현철 경제부 기자 hckang@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