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발표 후속조치로 경제계가 급박하게 돌아가던 11일 오후 2시께.

수출입은행이 긴급히 자료를 내놓았다.

내용은 자신들이 남북한간 자금거래를 담당하는 청산결제은행으로 뽑혀야 한다는 것.

지난 92년부터 업무를 추진해왔다며 적격자라고 주장했다.

북한에 사무소 설치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은행은 3시간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오후 5시께 "없었던 일로 해달라"고 기자를 찾았다.

앞뒤 사정을 알아보니 청와대 재정경제부 등이 남북경협과 관련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불호령을 받은 셈이다.

금융감독위원회도 해프닝을 벌였다.

남북정상회담과 관련,금융대책반을 만들려다가 정부대책이 확정될 때까지 통일부로 발표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서둘러 취소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아직 두달이나 남았다.

그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들은 자존심이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북한이 내세우는 것은 "자주"다.

자존심 만큼은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쪽에서만 잔치 기분을 내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기뻐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회담을 제대로 성사시키는 게 중요하다.

정상회담이 총선 사흘전에 발표됐음에도 상당수 국민들은 발표시기의 미묘함을 떠나 한마음으로 성공적 개최를 바라고 있다.

기관이기주의에 빠져 공을 다투거나 생색내기 경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소아적인 생각으로 이번 회담을 활용하려는 것은 배제해야 한다.

기업들도 서둘러 경협 추진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선의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경제단체가 해도 좋고 기업들의 또다른 연합체가 해도 괜찮다.

어디선가 경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교통정리,아니면 질서있는 진출을 도모해야 한다.

정부도 공허한 자금지원 계획만 내세울 일이 아니다.

국가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측이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지는 것은 곤란하다.

북한도 우리가 공개적으로 시혜성 지원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성숙한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준현 경제부 기자 kimjh@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