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간 접촉을 피해 오던 북한이 조평통 명의로 남한당국에 사회간접시설(SOC) 건설 제안서를 공식 체널을 통해 보내온 것은 남북 관계진전의 큰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북한당국자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신뢰하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사회간접시설(SOC) 건설없이는 북한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당국은 현재 산업시설 가동률이 30%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을 방문했던 내외국인들은 북한측이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얘기하고 있다.

설비가 노후화되고 남아 있는 설비마저 에너지와 부품 부족으로 장기간 가동이 멈춰 있다는 것이다.

일부 장치산업은 고철로 변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특히 도로와 항만이 부족하고, 농업식량 기반이 전무하다시피해 극심한 식량난이 해가 갈수록 더해지고 있는 것을 북한당국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긴박한 상황을 타개하지 않고서는 내부적인 갈등을 초래해 체제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게 대북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아래서 북측은 주중대사관을 통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SOC 건설 제안서를 한국에 보냈다.

그동안의 북한 태도로 볼때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의 조평통측은 지난 2월 15일 중국인 C씨를 권병현 주중대사에게 먼저 보내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C씨는 권대사에게 북측이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상호관심사를 해결할 의지가 확고하고, 접촉은 공개 또는 비공개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C씨는 이와함께 북측이 전제조건 없이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전하면서 북측의 경제협력 희망분야를 설명했다.

이런 북측의 메시지를 접한 권대사는 즉시 외교체널을 통해 본국에 보고했고,정부 대북사업부서는 권대사에게 서면으로 작성된 북측의 제안서를 받아낼 것을 지시했다.

이후 베이징(북경)에서 남북한 당국의 실무자들이 비밀리에 수차례 접촉,북측의 재원조달방법과 참여방식 등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시점과 맞춰 김대중 대통령은 동아일보 창간 80주년 기념회견에서 "선거후에 중동특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북한특수가 있을 것이며, 특히 중소기업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투자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북한 경제사정 등으로 볼때 북한이 가고자하는 방향이 이미 결정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총선후의 적당한 시점에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대북경제협력의 경우 인도적 지원과 경제적 협력이라는 두가지 방식이 있다"면서 "시혜적 성격의 인도적 지원은 최소한으로 하고,경제적 협력에 중점을 두되 유연성 있는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재계는 이번 북측의 SOC 건설 요청이 남북경협을 실질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로 보고 참여방안을 모색중이다.

국내 업체중 금강산 장전항 건설에 참여했던 현대건설측은 북한으로부터 건설공사에 대한 상당한 신뢰를 쌓았다는 판단 아래 대북 SOC 사업 참여에 적극 뛰어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북한내 공단에서 제품을 생산할 경우 저율의 관세로 중국에 수출할 수 있음은 물론 한국시장에도 무관세로 반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북한을 중국 및 러시아와 홍콩 동남아 시장진출의 거점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영근 기자 ygkim@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