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회의실.

무역수지 적자에 빠진 환자(경제)를 놓고 의사(정부)와 보호자(무역업계)
들이 머리를 맞댔다.

무역수지가 지난달 4억달러 적자로 돌아선데 이어 이달들어 지난 24일까지
12억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날 고민끝에 나온 처방은 수출 총력전.

수출을 늘려 무역적자를 잡겠다는 포석이다.

처방전엔 환율관리가 약방의 감초처럼 끼여 있었다.

그러나 이는 대증처방에 그친 느낌이다.

수출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20%대의 건전한 신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달에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32.1%나 늘었다.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수입에 있다.

수입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40%대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중이다.

지난 1월엔 50%선에 육박했다.

경기회복과 함께 내수가 가파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치재 수입이 급증하는 등 수입구조도 경제위기 이전의 과소비형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관리는 미봉책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수출을 늘릴 수 있지만 약효가 오래가지 않는다.

올해를 무사히 넘긴다고 해도 내년이 더 큰 문제다.

지난 2년간 고성장과 무역수지 흑자로 원화가치 절상(환율 하락) 기조는
불가피한 추세다.

명목환율을 무리하게 방어할 경우 실질환율과의 불균형으로 큰 후유증을
치를 수도 있다.

처방은 과속주행중인 수입에 제동을 거는 데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재정긴축과 금리인상 등 총수요를 진정시키기 위한 고단위
주사를 놓는 것도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한국경제는 경제안정화가 절실했던 때마다 성장둔화 등 단기적 코스트를
우려해 번번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여기엔 항상 비경제적 논리가 가세했다.

3저현상으로 단군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던 지난 1980년대 후반기와 과속
성장의 징후가 완연했던 1995년의 경우에 그랬다.

곧이은 물가상승과 버블경제는 경제위기를 잉태하고 있었다.

원화가치 절하를 통해 수출을 끌어올려 무역수지를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정책엔 한계가 있다.

미봉책으로 문제를 덮기 보다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근원적인 처방을 내려야 할 시기다.

< 유병연 경제부 기자 yooby@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