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의 고액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97%가 희생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 "예금전액보호제를 연장하면 공적자금 64조원을
더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시중은행장) "미국은 80년대에 예금보장한도를 확대(2만달러->
10만달러)했다가 부실 저축대부조합(S&L) 정리에 10년을 고생했고
일본은 전액보장 시한을 연장했다가 신인도까지 걱정하고 있다"(대학교수)
최근 금융권 일각에서 불거진 부분예금보호(2천만원까지 원리금보장)
시행 연기론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연기론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 자체가 금융개혁이 미진하고 모럴
해저드(도덕적해이)가 가시지 않은 증거라는 시각이다.

영업정지된 나라종금 사례는 예금보호장치를 악용한 표본으로 지적된다.

나라종금은 예금보호대상인 자기발행어음으로 고금리 수신을 대거
유치해 대우에 돈을 꿔줬다가 물렸다.

고금리를 좇은 기관들의 모럴해저드를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메워줘야
하는 꼴이다.

예금보호제도는 선진국에서도 필요악으로 간주된다.

이 제도는 금융회사가 망하면 정부가 예금을 대신 지급해주는 것으로
고객들이 괜한 불안심리로 돈을 빼가는 사태(뱅크 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안전장치는 최소한으로 줄여 시행하고 있다.

통상 1인당 GDP(국내총생산)의 2배수준을 보장하고 있다.

예금보호제도를 시행하는 68개국중 58개국이 원리금 부분보장을
채택하고 있다.

전액 보장해주는 나라는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멕시코 터키
등 금융위기를 경험한 나라들 뿐이다.

한국은 환란을 겪으면서 예금보호 범위를 2천만원에서 전액보장으로
바꿨다.

당시로선 모럴해저드 보다 금융시스템 붕괴 우려가 더 커 불가피한
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이 조치가 공적자금 확대와 구조조정 지연을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구제금융을 준뒤 가장 먼저 이를 환원할 것을
요구했다.

전액보장제가 존속되는 한 시장규율에 의한 구조조정은 공염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따라 내년부터 원리금을 합쳐 2천만원까지만 보장하는
예금보호제도를 강행하기로 방침을 굳혔다.

시장에 의한 금융구조조정을 예금 부분보장으로 완성한다는 복안이다.

IMF와 합의사항인데다 새삼 시행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기영 삼성금융연구소장은 "정책신뢰성이나 손실분담이라는 일반적인
원칙에 맞게 예금부분보호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는지를 국제금융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 인사는 "현재의 예금 전액보호는 부실 금융회사에 과도한
수신경쟁을 허용하는 꼴이다"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게 만드는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본과 미국의 선례는 타산지석으로 삼을만 하다는게 전문가들의지적이다.

일본은 작년말 집권여당이 예금전액보호 시행시기를 당초 2001년4월에서
1년간 연기했다.

이에 대해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금융개혁의 후퇴,정치입김의 작용이라고
신랄히 비판했다.

결국 일본정부는 이를 다시 환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80년대 저축대부조합의 위기원인을 예금보호 한도확대에서
찾고 있다.

예금보장액이 10만달러로 늘어나니까 부실한 조합이 수신과 대출을
마구잡이로 늘렸다.

그 결과 7백47개 부실조합을 정리하는데 무려 8백75억달러가 들었다.

양원근 예금보험공사 조사부장은 "시장에선 이미 예금을 쪼개 가입하는
등 상황변화에 적응하고 있으며 정부의 강행의사가 확고할수록 시장참가자들
의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정부의 시장안정 노력은 한층 강화돼야 할 전망이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기할때의 악영향이 훨씬 크다"면서
"정부도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장단기 금리격차 확대,채권 싯가평가제
등 시장불안요인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형규 기자 ohk@ked.co.kr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