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새벽 타결된 대우해외채권단과의 협상결과는 대우만의 일일까.

한국기업이나 금융회사 사람들 상당수는 자신들이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놓여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번 합의내용의 골자를 쉽게 풀면 한국기업이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금융사
의 돈을 한꺼번에 3조원 넘게 떼먹기로 했다는 것이다.

과거 부실기업을 정리할 때 외국채권자에게 정부나 국내금융사가 빚을 대신
갚아주던 관행이 끝장났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외국금융사가 한국기업에 잘못 대출한 책임을 졌다는 측면도 있다.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금융사의 시각은 어떻게 바뀔까.

외국금융사는 우선 돈을 꿔간 기업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꼼꼼히 챙길
수밖에 없다.

한국기업이 앞으로 외국금융사의 감시와 견제를 심하게 받을 것이란 얘기다.

제일은행처럼 외국자본에 넘어간 은행도 같은 행동원리를 채택할 것이다.

감시와 견제는 회계법인에 의해서도 강화될 전망이다.

합의내용에는 회계법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인정키로 한 대목이
있다.

회계법인이 감사한 재무제표를 보고 대출을 결정했는데 그게 잘못됐으므로
회계법인이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반영된 것이다.

국내금융사는 수많은 부실대출과 관련해 회계법인의 책임을 추궁한 적이
없다.

회계법인이 그런 소송을 당한다면 앞으로 기업측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외국금융사로부터는 "그룹"개념도 인정받기 어렵다.

같은 대우그룹사였지만 계열사별로 다른 회수율이 적용됐다.

외국금융사의 눈엔 앞으로 개별기업만 보일 것이다.

기업입장에선 재무적으로 독립해야 "남의 돈"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우해외채권단 협상은 그 자체가 큰 이정표다.

기업이 채권자 회계법인 주주가 샅샅이 살필 수 있도록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길로 접어든 것이다.

협상은 늘 잃은 것과 얻는 것이 있는 법이다.

이번 협상결과를 놓고 동등대우원칙을 버리고 외국채권단에 특혜를 줬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러나 돈을 떼먹고도 국제시장에서 신뢰를 잃지 않았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새 금융환경의 밑거름도 얻어냈다.

이번 협상결과에 대한 평가잣대는 미래가치이어야 한다.

< 허귀식 경제부 기자 window@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