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가 시.공을 흔들고 잇다.

밤과 낮을 구분하는 시간개념이 파괴된 것이다.

직장과 집을 구분하는 공간개념도 사라졌다.

직장에서 밤낮 연구개발에 매달려 "일하며 생활하는" 습관이 몸에 밴
젊은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의 열정이 가득찬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이곳엔 새로운 테헤란로 벤처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16일 오전 1시50분 무렵.

서초역에서 삼성역 인근까지의 테헤란로.

상당수 빌딩들에 불이 켜져 있다.

아주빌딩 강남센터빌딩 역삼 P빌딩 윤익빌딩 나래빌딩 세원벤처타운
경암빌딩 미래와사람빌딩 해강빌딩 무역센터 글라스타워 코스모타워
메디슨벤처타워 등...

주요 사거리 대로변의 고층건물들은 하나같이 벤처빌딩으로 변해 있다.

건물 외벽에는 "www.navercom" "연인이 다가오는 사이트 daksclub.co.kr"
"auction.co.kr" "egios.com" 등 인터넷 사이트 간판들이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건물만 변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 소프트웨어 기업 등이 테헤란로로 몰려들면서 한국에도 "벤처문화"
란 신풍속도가 자리잡고 있다.

20대초-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청바지를 입고 틈틈이 DDR 춤을 추어가며
밤새워 일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숙식을 회사내에서 해결하는 사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당장은 시간도 돈도 부족해 연애나 주식투자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도 "좋은 작품(상품)만 만들면 단번에 모든 것을 거머쥘 수 있다"
는 꿈을 안고 산다.

같은날 오전 2시30분께 서초동 소재 DVR(디지털비디오레코더) 업체인
성진씨앤씨.

30여 연구인력이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대학입시를 앞둔 고3
수험생들을 방불케 한다.

블루진 트레이닝복 카디건 티셔츠 등 복장차림은 다양하지만 이들의 목표
는 단 하나 "DVR 세계 장악"이다.

임인건(32) 연구소장은 "기술개발에 전념하다보면 주식투자엔 신경 쓸
틈이 없다"면서 코스닥 주가동향에도 별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사내 규정에 따라 컴퓨터에 주식프로그램을 띄우다 적발되면 즉각 스톡옵션
(주식매수청구권)을 반납하고 퇴사해야 한단다.

대신 올 상반기중 회사를 코스닥에 올려 황제주로 만들기 위해 내실을
다지는데 사원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

새벽 3시쯤 선릉역 인근의 게임업체인 넥슨.

20대 초.중반의 게임매니아 30여명이 게임 개발에 몰입해 있다.

조금 전 DDR 춤을 춘 열기가 남아 있다.

아직 초저녁인양 반소매 차림으로 헬스기기에서 몸을 푸는 사람도 있다.

15개 침대가 놓여 있는 5층 숙소는 사람이 없어 썰렁하다.

테헤란로에는 이같은 벤처기업들이 줄잡아 1천5백여개나 된다.

인터넷 관련 회사들의 신규 진입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 1년여 사이 30여개의 벤처기업 홍보전문회사가 이곳에서 문을 열었고
벤처캐피털의 40%가 여기에 몰려들었다.

이 지역 음식점들도 호경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테헤란로를 "테헤란밸리"로 명명하면서 마치 벤처산업단지의
전형인 것처럼 미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생산기반이 아닌 단순 연구개발 기반의 빌딩숲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 분야 "묻지마 창업" "묻지마 펀딩" "묻지마 투자"가
지속될 경우 자칫 "인터넷기업 대붕괴"와 "테헤란로의 공동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테헤란로에 명과 암이 함께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 문병환 기자 moo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