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1일 밤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지원자금
규모는 IMF의 실사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지만 적어도 6백억달러는 넘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으로부터 꼭 이태전 11월22일자 한국경제신문 1면 톱기사의 머리글이다

아침 밥상에 찾아든 이 소식은 전국민을 수치심과 절망감에 젖어들게 했다.

그후 2년.

한국은 또한번 기적같은 생명력을 과시했다.

누구도 예상못한 속도로 경제를 회생시켰다.

불과 2년만에 순채권국으로 돌아섰다.

국민소득 1만달러 고지에도 다시 바짝 다가섰다.

"IMF 모범생"이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세계인의 칭찬은 여기까지다.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 말들이 없다.

나라 밖에서는 물론이고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염려하는 소리만 있지 방향을 제시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

지구촌은 이미 "새천년 레이스"에 들어갔다.

세계 각국이 저마다 21세기 비전을 찾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뿐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등 후발공업국도 일찌감치
전략을 세워놓고 출발신호만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그리는 21세기 전략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활동을 뒷받침하는 인프라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좋은 사례다.

올초 일본 총리공관.

정.재계의 두 수뇌간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

"미국 경제의 부활은 83년의 영(Young) 위원회 구성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 위원회가 만든 리포트가 미국의 국가전략백서가 됐지요."(이마이 다카시
게이단렌 회장)

"그렇다면 우리도 일본판 영 위원회를 만들어 봅시다"(오부치 게이조 총리)

오부치 총리는 내각에 즉각 작업을 지시했다.

3월26일 51명의 각계 지식인으로 구성된 "산업경쟁력 회의"가 출범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 7월8일 발표된 "경제사회의 바람직한 모습과 경제신생의
정책방침"이다

"부국유덕"의 국가건설을 21세기의 과제로 삼은 이 보고서는 정보통신
생명공학 환경산업 등 21세기 주력산업의 육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가장 자주 한국과 비교되는 경쟁국 대만도 이미 지난 95년에 "아태 운영
센터 발전계획"이라는 10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2005년까지 대만을 동아시아 지역의 금융 수송 제조 등 각종 경제활동의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이다.

싱가포르 역시 작년 11월 경쟁력위원회가 수립한 "미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을 발표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성장의 두 엔진으로 삼아 세계적 경제거점으로 부상
한다는 구상이다.

부문별로 인더스트리 21, IT2000, 싱가포르 원 등의 계획도 추진중이다.

한국인들이 종종 "한수 아래"로 접고 싶어하는 말레이시아도 밀레니엄 준비
는 한국보다 앞서 있다.

2020년까지 산업화와 사회개조를 시도하는 "비전 2020"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경제정의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연평균 7%의 성장을 이룬다는
목표다.

선진국과 경쟁국들의 이같은 사례들은 한국에게도 "새천년 준비"를 재촉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그동안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는 씨름만 거듭해
왔다.

오히려 "구조조정과정에서 연구개발 투자와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등 "축소
지향의 개혁"에 매달리고 있다"(유한수 전경련 전무)는 우려까지 자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그 결과는 자명하다.

그저 반복되는 위기를 벗어나는데만 급급하다 세계무대의 뒷전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가 그랬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국가전략 다시짜자" 시리즈의 일환으로 외국은 어떻게
밀레니엄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국가전략을 어떤 방향으로 짜야할지 좌표를 구하고자 하는 취지다.

우선 제4부에서는 미국 일본 영국의 밀레니엄 전략을 현지 특파원들이 취재
했다.

이들 나라는 제각각 "팍스 아메리카나" "팍스 자포니카" "팍스 브리타니카"
를 내걸고 21세기 경제패권을 다투고 있다.

이어 제5부에서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공동으로 핀란드 네덜란드
스위스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유럽 5개국의 경쟁력 구조를 심층 분석할
예정이다.

이들 5개국은 세계경제포럼(WEF),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등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항상 상위권에 오르는 나라들이다.

특히 경제규모가 한국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국가전략 수립에 많은 참고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임혁 기자 limhyuck@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