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삼성생명 상장논란을 계기로 재벌소유 금융기관들의 기업공개(상장)
를 적극 유도키로 한 것은 법규와 감독만으론 재벌의 사금고화 폐단을 막기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을 통한 직접적인 규제엔 한계가 있다.

수많은 감시자들이 활동하는 "시장"에 의해 자율적으로 통제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는게 정부의 기본시각이다.

기업이 증시나 코스닥시장에 상장되면 대주주 지분변동, 계열사 출자.자금
지원 등 시시콜콜한 사항을 다 외부에 알려야(공시해야) 한다.

상장종목은 소액주주, 기관투자가, 외국인 등 "자본시장의 시어머니"들이
철저히 감시한다.

따라서 공개를 통해 직접금융의 수혜를 받으려면 먼저 투명경영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셈이다.

현재 웬만한 금융기관들은 공개요건을 갖춘 경우 대부분 상장돼 있다.

다만 계약자(가입자) 몫에 대한 논란이 있는 생보사와 투신사만 공개대상
에서 제외됐다.

IMF체제 이전 시장기능이 작동하기 전엔 공개가 됐어도 경영투명성이 미흡
했다.

그러나 소액주주 권한강화, 사외이사제 의무화, 소유지배구조 개선 등
시장시스템이 작동하면서 "공개=투명경영"이란 등식이 서서히 성립돼 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헌재 위원장은 "재벌계열 금융기관이라면 최소한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공개된 금융기관이 아무리 법규를 위반해도 비공개 금융기관보단 낫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다.

정부는 재벌의 제2금융권 독식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금감위 공정위 등에서
전방위로 압박하지만 궁극적인 해법을 "시장"에서 찾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더욱이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넘어서면서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은행중심에서 직접금융 위주로 바뀌는 마당이다.

증시라는 경제의 거울을 통해 재벌계열 금융기관들의 깊은 속까지 속속들이
비춰 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그동안 비상장 생보사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계열사의 주식 기업어음
회사채 등 유가증권은 물론 부동산까지 사실상 마음대로 지원해 왔다.

투신사도 증시활황속에 재벌들의 새로운 자금줄로 떠올라 편법지원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

은행에는 산업자본의 소유제한 있지만 2금융권은 오너들 마음대로였다.

왜 공개해야 하는지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공개에 앞서 사회공론화를 통해 정리돼야 할 문제가 있다.

생보, 투신사가 주주만의 것이냐는 논란이다.

삼성생명의 자산이 36조원이지만 자본금은 9백36억원에 불과하다.

주주가 출자한 돈의 3백배이상을 계약자들이 맡긴 것이다.

투신사도 수조원, 수십조원의 자산을 자랑하지만 수익증권을 산 고객들이
돈을 빼가고 나면 남는게 거의 없다.

그만큼 자산가치 평가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투신사들은 특히 고유계정과 신탁계정간 뒤엉켜 있는 문제점을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

이헌재 위원장은 8월하순부터 금융연구원 주관으로 생보사 상장에 앞서
계약자몫 배분, 자본이득 환원 등의 문제를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늦어도 11월까진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삼성생명 대주주인 이건희 삼성회장과 삼성에버랜드의 지분변동이 작년말,
올초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 지분변동시 1년내 공개가 금지돼 내년 2~3월께 교보생명과 함께
상장이 허용될 전망이다.

금감위는 또 내년 7월부터 기존 투신사의 정상화방안을 모색하면서 워크숍
등을 거쳐 투신사 상장문제를 검토할 방침이다.

< 오형규 기자 o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