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들이 주어진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있다.

사외이사란 오너나 최고경영자의 전횡을 막고 기업경영이 바른 길로 가도록
견제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국내기업과 금융기관들은 IMF체제이후 사외이사를 앞다퉈 영입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선 보편화됐있다.

미국 GM에선 92년사외이사들의 "반란"으로 CEO(최고경영자)를 경영위원회
의장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사장을 부사장으로 강등된 바 있다.

이처럼 "견제와 균형"이란 사외이사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나
은행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왕따", "들러리" 사외이사가 흔하다.

경영진은 경영정보를 차단하기 일쑤다.

일부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밀착하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살핀다는 얘기도
많다.

또 사외이사들이 본업에 바쁜 경우가 태반이어서 열의를 갖고 덤벼들기도
어렵다.

증권거래소 분석에 따르면 전체 이사수의 4분의1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하는
상장기업에서 사외이사의 이사회 출석률이 41%(5월중)에 불과했다.

10명중 6명은 아예 나오지 않은 셈이다.

특히 지배주주에 관한 사항을 결의할땐 출석률이 21%에 불과했다.

(주)대우는 3명의 사외이사가 세차례 이사회에 한번도 나오지 않아 출석률
"제로"를 기록했다.

각 기업이 처음 사외이사제 도입때의 거창한 선전과 달리, 실제 운용에선
흐지부지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같은 현상은 기본적으로 회의 토론보다는 일사분란한 의사결정체제에
익숙한 국내기업들의 경영관행 탓이란 지적이다.

오너나 최고경영자 한사람에 의한 "나를 따르라"식의 관행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행정부처들이 각종 위원회를 유명무실화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정경제부 증권제도과 김용범 서기관은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에 대한
경험이 일천한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외이사제가 효과를 보려면 <>사외이사 선발의 독립성 <>전문성
<>경영자.대주주의 열린 자세 등 3박자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진과의 갈등과 책임때문에 중간에 그만두는 사외이사도 있다.

올들어 임기를 채우지 않고 물러난 사외이사는 60명에달한다.

사외이사 구성에도 문제가 많다.

정부는 사외이사에 대주주의 친인척이나 계열사 임직원 등을 배제토록 했다.

하지만 막상 마땅한 사외이사감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기업들의
얘기다.

사외이사를 육성할 기반이나 "인재풀"이 없기 때문이다.

상장기업의 관계자는 "명망있는 전문가들을 모시려 해도 바쁘거나 여러
기업에 겹치기 사외이사로 걸친 경우가 많아 애를 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외이사가 이사수의 절반이상인 은행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은행의 사외이사 출석률은 65.4%로 제조업의 35.7%보다 월등히 높지만
운용실태는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금감원은 하반기에 실태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19개 일반은행은 올해 주총에서 외국인 7명을 포함 1백62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이중 금융인은 20명(12.3%)에 불과했고 기업인(45.7%) 교수 연구위원(22.8%)
가 주류를 이뤘다.

금융연구원 고성수 박사는 "금융의 문외한이 선임되면 들러리가 될 가능성이
많다"며 "선진국 은행에도 비전문가가 선임되지만 사전에 경영상태를 철저히
연구하는 게 상례"라고 말했다.

사외이사의 구성이나 숫자에 글로벌 스탠더드는 없다.

국가나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직 평가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주택은행의 사외이사인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작년 부실은행 인수때
사외이사들이 제동을 걸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행장중심적 경영체제에서
사외이사제를 활용하는 여건과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빛은행 이촉엽 감사도 "사외이사제의 성공을 위해선 경영진 주주 등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본격 시행한지 얼마안된 지금 평가
를 내리긴 이르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상장기업에 대해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를
이사회안에 두도록 했다.

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올해안에 사외이사 확대를 골자로 한 기업
지배구조 권고안을 내놓는다.

사외이사제는 이제 대세다.

경영자의 "열린 자세"와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열의"가 합쳐져야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오형규 기자 o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