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상으로만 보면 경기는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 금리 환율등 금융부문은 물론 생산 출하등 각종 산업활동지표들도
온통 파란불이다.

3월중 산업생산은 18.4%나 늘었다.

95년 반도체 호황시절과 맞먹는 수준이다.

공장가동률도 74.6%로 높아졌다.

수치만으로 보면 산업현장에 활기가 가득하다.

삼성전자의 정의용 이사는 "작년에는 생산조절을 위해 5차례나 가동을
멈췄는데 요즘은 24시간 풀가동체제"라고 전했다.

여기에 도소매 판매나 내수용 소비재 출하같은 소비관련 지표들도 가파른
회복세를 기록중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속단 할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우선 3월 한달의 동향만으로는 "증거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 소장은 "지난 1월에도 생산증가율이 14.8%에 달했
다가 2월에는 3.9%로 미끄러졌다"고 상기시켰다.

경기회복이 기조화 되려면 적어도 3개월 이상 생산증가율이 안정된 상승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산업지표들은 최악의 상황이었던 98년과 비교된 수치라는
한계도 있다.

지난해 급속한 위축에 대한 기술적인 반등이 가세한 덕택이란 얘기다.

대우자동차의 권혁수 이사는 "3월에 판매대수가 11.9% 늘어났지만 경기가
풀렸다고 느끼는 직원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부천공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체감경기는 아직 냉랭하다는 얘기다.

투자부문도 마찬가지다.

설비투자가 당초 예상보다 빠른 회복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기계류수입액과 국내기계수주는 3월중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8.3%와
15.8% 증가했다.

그러나 이 수치도 외환위기 직후의 "투자 빙하기"와 비교한 것이다.

절대적인 수준은 아직 외환위기 이전을 크게 밑도는 실정이다.

건설투자의 경우는 더욱 심해 3월중 국내건설수주가 지난해 동기대비
51.1%나 감소세를 보였다.

정부도 건설경기의 경우는 내년 이후에나 살아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직 IMF체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문이 많다는 문제점도 있다.

산업생산증가의 절반정도를 반도체 자동차 통신장비 컴퓨터등 4개산업이
이끌고 있다.

경공업 생산은 3월에도 4.9%에 머물렀다.

재고동향도 모습이 안좋다.

향후 전망이 밝다면 기업들은 재고투자를 늘리게 된다.

그런데 기업들은 3월에도 재고수준을 18.7%나 줄였다.

아직도 매기에 비해서는 재고가 넘친다는 뜻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경기변동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적정재고 수준 자체를 줄여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초저금리에 의한 주식과 부동산등 자산가격의 상승이 실물경기 회복을 보장
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제조업은 구조조정등으로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금융에 이은 실물경기의 회복세를 어떻게 투자에 연결시키느냐가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29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4백10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최근 기업금융동향과 정책과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금리하락세
에도 불구하고 설비 및 기술개발 투자에 소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자금조달의 목적이 대부분 운전자금 확보(34.5%)와 부채상환(34.1%)이라는
것이다.

설비확대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15.3%에 불과했다.

특히 5대그룹 계열사는 신규조달자금을 부채상환에 사용할 계획이라는
응답이 전체의 45.5%에 달했다.

김성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진단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금융시장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산이 높을 수록 골도 깊다"는 증시격언을 인용한다.

증시가 지나치게 부풀어 오를 경우 정작 조정국면을 맞았을 때는 가라앉는
폭이 커져 실물경기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순원 현대경제연구원 부사장의 처방은 규제완화다.

"금융 활황세에서 나오는 자금의 물꼬를 기업투자쪽으로 터주기 위해선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어줘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는 또 "환율 금리 등 거시변수를 현 수준에서 안정시키는게 가장 중요하
다"고 덧붙였다.

신후식 대우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높이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투기 분위기를 조장해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경고의 메세지가
담겨있다.

이들은 이밖에도 경기의 흐름을 뒤바꿀 요인이 산재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국내여건만 봐도 그렇다.

고실업사태 노사불안 구조조정등으로 지속적인 경기상승을 이어가기엔
곳곳에 지뢰가 잔뜩 깔려 있는 형국이다.

대외여건도 마찬가지다.

국제유가는 이미 상승세로 돌아섰다.

세계경제를 지탱해온 미국경제도 성장율이 둔화되는 등 피로의 기색이
역력하다.

향후 경기 흐름을 V자로 보지 않고 W자형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많은 것도
이같은 불확실성을 반영한다.

따라서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외줄을 타는 기분"으로 정책의 미세조정(fine
tunning)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 임혁 기자 limhyuck@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