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보완할 점도 적지 않다"

23일 문을 여는 부산의 한국선물거래소와 선물시장에 대해 시카고의 선물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이렇게 평가한다.

시카고 선물시장 전문가들은 세계 10위권의 산업생산능력과 교역규모,
자본축적 정도 등을 감안할 때 한국 선물시장은 고속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한국 경제에 대해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콜린 라자 CME 이사는 "지난 97년말의 외환위기로 외국인투자자들이 줄줄이
이탈했지만 일시적 현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이 위기를 겪었던 국가중 가장 먼저 IMF를 졸업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선물시장의 성장가능성도 높다는 것.

시카고선물시장 관계자들은 오히려 지금까지 한국에 선물시장이 없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길 정도다.

그들은 우선 한국선물거래소가 채택한 전산매매(Electronic Trading) 방식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잘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시카고의 3개 선물거래소와 영국의 런던금융선물거래소(LIFFE) 등 세계
주요 선물거래소들이 아직 공개경매(Open Outcry) 방식으로 매매를 체결하고
있지만 공개경매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없다고 진단한다.

"시대적 조류를 제대로 감지함으로써 한국은 사회적 비용을 많이 줄일수
있게 됐다"고 레오 멜라메드 CME 명예이사장은 말했다.

사이버 매매 시스템 구축에 대한 한국 선물업계의 노력도 시카고 시장은
높이 사주고 있다.

사실 선물의 메카 시카고에서도 인터넷 매매는 이제 시작 단계다.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시카고 선물업계 랭킹 10위권인 ED&F 정도가 이제 가동을 준비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의 "칭찬"은 대부분 "하드웨어"에만 집중된다.

선물시장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시카고 시장 관계자들이 가장 미심쩍어 하는 부분은 투자자 보호 방안.

"거래대금의 결제가 제대로 이루어질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남겨 놓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결제불이행 때 대지급하는 문제.

거래고객이 파산으로 대금을 내지 못할 경우 시카고는 거래 선물중개회사->
공동기금->거래소 및 전체 선물중개회사의 순으로 돈을 대신 물어주도록 하고
있다.

다른 선물 투자자의 돈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손을 대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두고 있다.

반면 한국은 거래 선물중개회사->공동기금->선물중개회사와 거래하는 다른
투자자->거래소 및 전체 선물중개회사의 차례로 책임을 지도록 돼 있다.

여차하면 투자자의 돈을 쓰겠다는 자세다.

한국에선 투자자 보호보다 거래소 보호와 선물시장 안정이 더 중시되고
있다.

미국 선물감독위원회(CFTC)의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선물시장 조기육성을
위해 이런 규정을 둔 것은 이해가 된다"면서도 "한국투자자의 파산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돈을 물어줄 경우가 발생할 경우 어떤 외국인이 투자
하겠느냐"고 일침을 가했다.

시카고 선물시장 관계자들은 또 한국선물거래소와 선물중개회사의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현재 한국선물거래소의 자본금은 3백30억원이며 선물중개회사는 1백억~
2백30억원 수준이다.

카 퓨처스의 브로커인 헨리씨는 "세계적 은행들은 10억달러 정도의 매도
매수주문은 아무렇지 않게 낸다"며 "증거금만 1억달러인데 한국 선물회사나
거래소가 맡을 능력이 있겠느냐"는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각 선물중개회사들이 투자자 파산에 대비해 쌓아놓은 손해배상공동기금에
대해서도 최소한 10배는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규모가 작다보니 그들의 걱정은 유동성으로 이어진다.

유동성이 부족하면 사고 싶을때 살수 없고, 팔고 싶을때 팔수 없게 된다.

로젠탈 콜린스의 마이크 다우슨 사장은 "파생상품 거래 경험이 부족한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이 적극 참가할지 두고 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선물거래에 소극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시카고 시장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또 있다.

한국의 풍토가 그것이다.

기자는 "한국인들은 선물을 투기장 정도로 여기지 않느냐"는 질문을
여러차례 받았다.

일반인들의 과도한 직접투자, 기업과 금융기관 경영진의 선물투자 패망론
등이 근거였다.

한국선물거래소가 23일 마침내 문을 연다.

선물시장의 조기 정착은 단지 IMF를 극복하는데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새 밀레니엄에 걸맞는 금융시스템을 설계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초석이다.

밑기둥이 튼튼하지 못하면 훌륭한 건축물이 절대 세워질수 없다.

1백50년의 전통을 지닌 시카고의 충고를 흘려들어서는 않된다.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규정과 시스템을 정비하고 건전한 투자분위기를
형성하라는 그들의 조언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천년의 끝에서 온 국민의 시선이 한국선물거래소와 선물업계에 집중되고
있다.

19세기 중반 세워진 시카고의 선물시장은 20세기 절대강자 미국의 기초를
굳건히 다졌다.

한국선물거래소와 선물업계도 그러한 역할을 해 낼지 기대가 귀추가
주목된다.

< 시카고= 박준동 기자 jdpowe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