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새벽 3시 주택은행 구리지점.

채 가시지 않은 어둠속에서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몰려든 인파는 금새 긴 행렬을 이뤘고 이들은 추위를 쫓기위해 군데 군데
장작불을 피웠다.

잠이 덜깨 하품을 연발하는 사람, 손을 비비며 발을 동동 굴리는 사람들로
은행앞은 흡사 새벽 인력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다름아닌 청약자들.

이날부터 청약접수에 들어가는 구리토평지구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새벽
부터 "법석"을 떤 것이다.

부동산투자 "열풍"은 비단 이곳만의 얘기가 아니다.

용인 수원 등 수도권 요지의 모델하우스엔 어김없이 방문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청약률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프리미엄도 덩달아 상한가다.

"떴다방"이 설치는가 하면 "복부인"이 다시 등장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IMF 관리체제 이후 부동산시장에 모처럼 봄바람이 완연하다.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부동산관련 규제가 풀리면서 주택시장이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의 저금리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한때 연리 20%대를 넘나들던 금리가 한자리 숫자로 곤두박질치자 투자처를
잃은 시중의 뭉칫돈이 부동산에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빈사상태"에 빠졌던 부동산시장이 바야흐로 새로운 활력으로 가득차 있다.

<> 자금유입이 본격화되고 있다 =청약률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 인기지역의 경우 몇십대 1의 경쟁률은 예사다.

최근 분양이 끝난 구리토평지구 대림.영풍아파트 대형평형은 1백대 1을
넘기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 대우아파트, 경기도 안양시 평촌 대림아파트 등 조합아파트도
몇시간만에 조합원 모집을 끝냈다.

청약경쟁이 이처럼 과열로 치닫자 투기징후도 곳곳에서 눈에 띤다.

계약도 안한 아파트에 수천만원의 웃돈이 붙는 것은 보통이고 청약통장
불법거래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기존 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올들어 시작된 조정국면에서도 가격이 뛰고
전세값이 급등한 곳이 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인 곳이 압구정동 문정동 등 서울 강남권 대단지와 분당신도시.

이들 지역 아파트값은 IMF 관리체제 이전인 97년 10월의 90%선까지 회복
됐다.

특히 분당신도시는 전세값이 이전보다 오히려 웃도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구미동 청구아파트 33평형(2억~2억3천만원)은 2년전 가격과 불과 1천만원
선으로 육박하고 있다.

전세값(9천5백만~1억5백만원)의 상한가는 오히려 5백만원 비싸다.

특히 경매시장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환금성이 높은 아파트는 물론 준농림지 상가빌딩 등 대형물건도 수요가
달린다.

감정평가액이 시세와 엇비슷해도 입지여건만 좋으면 고가낙찰이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낙찰가율(감정평가액 대비 낙찰가의 비율)도 상승행진이다.

지난해 9월 57.6%에 머물던 상가빌딩 낙찰가율(서울 동부지원)이 지난
3월에는 76.5%선으로 뛰었다.

토지시장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올들어 지난 2월까지 토지거래건수는 27만9천1백28필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 늘어났다.

좀처럼 수요를 찾아보지 어려웠던 상업및 업무용지도 팔려 나가고 있다.

토지공사의 경우 지난해 12월까지 이들 토지의 매각실적이 거의 전무했으나
올들어 지난 1,2월 두달동안 9만2천평(1천9백80억원) 판매실적을 올렸다.

<> 투자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시장상황은 IMF 관리체제 이전과
비슷해졌지만 투자풍속도는 많이 달라졌다.

"환란"을 겪은 탓에 수요자들이 보다 냉정해졌기 때문이다.

"사두기만 하면 오른다"는 "묻지마 투자"는 이젠 과거지사다.

수익성 유동성은 물론 세금문제까지 꼼꼼히 따진다.

"게임의 법칙"을 준수하려는 정석투자의 틀이 갖춰지고 있는 것이다.

두드러지는 것은 선별청약.

시공사의 지명도, 가격, 입지여건, 단지규모가 아파트 구입의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인기를 끄는 곳은 예외없이 대형건설업체가 지하철 역세권에 짓는 1천가구
이상 대규모 단지란 것도 이를 반증해 준다.

재개발.재건축시장에서도 변하고 있는 투자관행을 엿볼수 있다.

사업단계별 투자시점이 명확해지고 있다.

지구지정, 사업승인, 이주비지급 등 가격이 오르기 직전에 매입했다가
되파는 수익률에 근거한 투자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 단타도 극성을 부린다 =IMF 관리체제 이후 부동산투자의 주류는 발전
가능성이 높은데 비해 가격이 싼 곳에 돈을 묻어두는 장기투자.

금액이 크고 여윳돈일수록 정석투자의 경향이 강하다.

금융상품 주식 부동산에 자산을 분산하는 포토폴리오식 투자패턴도 부동산
에 대한 맹목투자를 기피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소액투자자들은 이런 "대세"와는 달리 단타에 몰입하는 극단적
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리가 너무 떨어지고 증권은 불안해 가치하락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동산에 마음이 쏠리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배팅"하기엔 자금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최소투자단위는 통상 억대를 넘어선다.

그래서 1천만~2천만원을 굴려 아파트를 당첨받자 마자 되팔고, 경매보증금을
걸고 낙찰받은 후 즉시 팔아치우는 한마디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편법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