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전기의 김태공사장(39)에게 지난 30일은 평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이날 하루 5천2백만원의 돈을 급히 구해야만 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은행 동시화지점에 돌아오는 어음을 갚지 못해 부도가
날판이었다.

평소 자금 걱정을 하지 않던 그로선 숨이 콱 막히는 일이었다.

손안에 5천만원어치의 장기어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퇴출은행인 동화은행
안산지점에서 전혀 할인을 받을 길이 없었다.

그는 일단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집안에서 동원할 수 있는 돈은
다구해보라"고 다그쳤다.

그는 먼저 개인사업을 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동생이 1천만원정도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다음으론 가끔 돈을 빌려간 친구의 회사를 찾아갔다.

친구를 만났으나 입열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여기서 5백만원을 구했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아무리 전화에 매달려도 더이상 돈을 빌릴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입안이 바싹바싹 탔다.

거래하던 상호신용금고를 찾아가 애걸하고 친가 처가 거래처등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동안 신용을 잃지 않았음에도 은행 마감시간이 다돼서야 간신히
5천2백만원을 막았다.

일단 돈을 막고 나자 허탈간이 몰려왔다.

분명히 5천만원에 이르는 어음을 주머니속에 넣어다니면서도 왜 돈을
꿔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김사장은 기자를 만나자 마자 어음을 내보이며 이렇게 물었다.

"이 어음은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무정전 전원장치(UPS)를 납품하고
받은 진성어음인데도 퇴출을 인수한 은행에서 할인을 해주지 않다니
말이 됩니까"

전남 곡성출신인 김사장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15세에 무작정 상경해
청계천에서 전원장치 기술을 배웠다.

그가 사장이 된 것은 19세때.

4년간 차곡차곡 모아둔 돈으로 청계천에서 전압조정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부터 그는 돈을 빌려줄지언정 결코 꾸진 않기로 마음먹고 사업을
해왔다.

성광전기는 시화공단으로 자리를 옮겨 부정전 전원장치를 만들면서 중견
기업으로 떠올랐다.

20년간 오직 한길만 걸어온 셈이다.

성광전기는 최근 일본으로부터 UPS수출주문을 받으면서 활기에 차 있다.

특히 지난해 개발한 낙뢰보호용 UPS에 대한 주문이 밀려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거래은행이 퇴출됐다는 이유로 고통을 당해야
하는 건 너무나 억울했다.

이번 은행퇴출이 기업을 괴롭히는 건 어음교환이 불가능한 것만이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인수은행이 기존 신용보증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광전기는 현재 신보의 신용보증으로 동화은행에 3억원의 어음할인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수은행측이 이를 그대로 받아주지 않으면 7월중에 돌아오는
어음 3천만원을 막을 길이 아득해진다.

성광전기와 같이 애타는 처지에 놓인 기업은 시화공단에서만 30여개사에
이른다.

이제 키는 인수은행이 쥐었다.

인수은행인 신한은행의 판단에 따라 성광전기처럼 건실한 기업이 죽거나
활기를 되찾게 된다.

신한은행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려보자.

< 이치구 중소기업 전문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