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무너지고 있다.

대기업의 생산이 급격히 줄면서 중소기업부도가 크게 늘고 있다.

실업 여파로 상가는 이미 철시분위기다.

지난해 6월 1백만명을 넘어섰던 울산인구가 최근 1백만명 밑으로 다시
감소했다.

울산경제의 침체현장을 가봤다.

<> 곤두박질 치는 가동률 =울산 최대 제조업체 현대자동차의 22라인.

수출용 쏘나타와 그랜저 다이너스티를 생산하는 이 라인은 지난주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나머지 라인도 사정은 크게 다를게 없다.

경승용차 아토스 라인만 2교대로 돌아갈 뿐이다.

1교대 8시간 작업을 마치면 모든 라인이 가동을 멈춘다.

다른 공장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현대중공업이 괜찮다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괜찮다는 조선사업부문은 40%에 불과하다.

철구조물이나 중장비 사업은 역시 "엉망"이다.

석유화학공단은 지난 주말부터 대부분 회사가 정기보수에 들어갔다.

내수가 완전히 죽은데다 수출가격도 계속 떨어지던 참에 정기보수기간이
닥쳐 다행이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수출비중이 낮은 회사들의 경영은 말 그대로 심각하다"(한화종합화학
이상철 전무).

내년이면 이 공단의 절반이 외국기업이 돼 있을 것 같다는 전망이 이곳
근로자들의 가슴을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올들어 울산지역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나 감소했다.

나라 전체 수출은 6~7%씩 꾸준히 늘고 있지만 울산지역의 수출은 오히려
6~7% 줄어들고 있다.

<> 쓰러지는 중소기업 =모기업의 가동률 저하는 협력업체를 직격한다.

효문공단 연암공단 등 중소기업공단에는 부도도미노 사태다.

지난 1~4월중 울산지역의 부도업체수는 2백47개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배가 넘는 회사가 문을 닫았다.

현대자동차에 물건을 대는 (주)공화는 납품물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 줄었다.

매출감소와 환차손의 2중고를 겪고 있다.

보너스와 성과급 8백%는 이미 모두 반납했고 경비는 일괄적으로 50%씩
줄였다.

이 회사 경주공장장 신진식 전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래도 이 회사는 "양반"이라는 것.

지난해 기업을 공개해 자금조달면에서 다른 회사에 비해 형편이 낫다.

상황이 나빠지니까 품질도 떨어진다.

프레스부품을 현대자동차에 공급하는 K사 사장은 "2차 협력업체들로부터
들어오는 부품의 불량률이 3배까지 높아졌다"고 말한다.

이유는 뻔하다.

어음막기에 급급한 사장들이 공장을 못 챙긴 때문이다.

근로자들도 마찬가지.

자신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마당에 품질은 뒷전일 수밖에.

해외에 부품 수출을 해야하는 이 회사 사장은 부도난 하청업체의 금형을
들고 이 업체 저 업체를 돌아다닌다.

그러나 이 부품을 만들어 주겠다는 회사는 없다.

어음결제기간도 당연히 늘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울산지점에 따르면 대기업의 지급어음 결제기간은 지난해 연말
68.8일에서 79.2일로 크게 연장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얼어붙은 소비 =내구소비재가 전혀 팔리지 않는다.

가전대리점들 거의가 도산한 상태.볼보등 수입차 매장도 문을 닫았다.

소비재도 마찬가지.세원마트 아람마트 같은 할인양판점이 제법 된다지만
백화점도 식품가격을 마트수준으로 내렸다.

현대백화점 모드니백화점 등은 매출이 30~40% 감소했다.

현대백화점은 주리원백화점 시절 성남점에서만 하루 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올해는 그 보다 훨씬 큰 삼산점 매출을 합쳐도 6억원을 넘질 못한다.

고객수가 줄어든 것이 이유다.

여기에다 구매고객들이 물건을 구입하는 규모가 줄어들었다.

현대 삼산점의 객단가는 4만4천원에서 3만원으로 떨어져 있다.

백화점 매출이 지난 95년에 비해 줄어든 곳은 지방도시 가운데 울산이
유일하다.

95년에 1백원어치(불변가격)를 팔았으면 지금은 87원어치를 파는데 그치고
있다.

<> 늘어가는 실업 =현대자동차에 윈도레귤레이터를 납품하는 광진상공은
3백80명의 직원중 50명을 내보냈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주부사원들이다.

"전근대적인 발상이지만 여자들을 내보내는게 가장들을 내보내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고 당사자들을 설득했다"는게 이 회사 정기범 사장의 이야기다.

"회사 형편이 피면 아주머니들 자녀들부터 우선 채용하겠다고 했다"는 그는
이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석유화학공단도 마찬가지.

공단내 한화종합화학은 7백75명의 직원 가운데 70명을 내보냈다.

다른 공장들도 대동소이하다.

공단입주업체들이 출자해 세운 울산석유화학지원주식회사까지 3백47명의
직원 가운데 60명 가량을 곧 정리한다는 얘기다.

계속해서 실업자는 양산되는데 일감을 주겠다는 곳은 거의 없다.

노동부와 울산광역시가 세운 울산인력은행은 지난 14일 구직자.구인자
만남의 광장을 열었다.

수많은 구직자가 이 행사를 찾았지만 실제 일자리를 구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기업들은 인력을 줄이지 않고선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장 정달옥 부사장은 "30%를 희생시켜서라도 70%를
살려야 한다"며 "그래야 다시 30%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근로자들은 반대다.

파업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벌써 24일이나 지자체선거가 끝난 직후인 6월5일께 대대적인 파업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정 부사장 역시 "기업들도 인원감축을 최소화해야 하지만 파업만큼은 절대
없어야 한다"며 불안해 한다.

"울산이 살아야 나라경제가 살텐데..."

< 울산= 김정호 기자 j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