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수출입위기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무역금융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수출계약을 해놓고도 신용장네고를 못해
포기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이에따라 바이어이탈이 속출하는 가운데 플랜트 등 장기프로젝트 수주는
사실상 포기상태다.

내년초엔 기름 가스 밀가루등 필수 수입원자재의 공급난이 한꺼번에 겹쳐질
가능성도 있어 국내 관련 산업이 "스톱"되는 파국이 우려되고 있다.

이미 철근파동으로 건설공사에 지장이 생기고 있고 백상지 등 사무용지에
이어 신문용지도 수급이 달려출판업계를 압박하는 등 연쇄파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23일부터 외상지불(D/A,D/P,유전스) 조건의
수출환어음네고와 로컬신용장 개설을 전면 중단했다.

지난 주말부턴 수입신용장개설과 일람불(At Sight)신용장의 추심전 네고도
사실상 중단했다.

무협의 긴급조사에 따르면 수출견인차인 반도체 3사가 네고를 못한 신용장
이 4억1천만달러에 달한다.

무협은 "7대 종합상사의 네고거절이 수출액의 50~70%선에 이른다"면서
"최근 중소제조업체들의 도산은 대부분 네고부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중은행 외환담당들은 "지금 네고해줄 경우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 산정기준일인 이달 31일까지 수출대금이 입금되기 어려운데다
한국은행의 외화지원이 축소될 것으로 보여 어쩔수 없다"고 밝히고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또 네고한 달러자금을 즉시 매각하거나 외화예금
으로 적립하는 조건을 내걸어 수출업체들의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가전수출업체인 S사의 경우 약 1백만달러를 네고하면서 원화자금으로 환전
하라는 은행측의 요구에 밀려 약 8천만원의 환전수수료를 부담해야 했다.

종합상사 외환팀들은 "일람불신용장의 네고중단은 국제은행간 지급보증을
무시하는 것이어서 국제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진다"고 걱정하고 있다.

현대 삼성 등 대형 건설업체들과 한국중공업 등 플랜트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계약된 해외사업이나 수익성이 확실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해도
은행들이 1백% 담보를 요구하는 등 자금지원을 꺼려 국제입찰참가를 위한
본드(이행보증서)발행도 중단위기"라고 말했다.

대구의 섬유수출업체인 대경상사의 박명부 사장은 "네고지연으로 클레임을
각오하고 내년초로 납기를 조정중이지만 대부분 바이어이탈로 이어진다"면서
"수출시장의 기반붕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통산부는 "이런 식이면 내년초 석유류 나프타고철 등 주요원자재
수입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통산부는 수입신용장개설중단으로 나프타는 내년 1월 중순부터 석유류및
LPG도 1월말부터는 수급차질이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환율폭등과 네고난 등으로 인한 정유업계의 현금결제비중이 지난달에
11%이던 것이 내년초에는 50%선으로 급등했다.

제철업체들과 수입중계상들은 국내수요의 30%를 충당하는 외국산고철수입을
포기한 상태여서 생산차질은 시간문제다.

제분업계도 당장 내년 1월 선적분 4만여톤(7백만달러 상당)을 들여와야
하지만 네고수단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이 업계는 "소맥재고가 내년 2월이면 바닥난다"면서 "만약 1월 선적이
어려워지면 라면등 제분연관업계의 가동중단사태가 우려된다"고말했다.

한전 가스공사등은 "발전, 가스공급 등에는 아직 문제없다"면서도 "위기
상황에 대비한 비상수급대책을 점검중"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도 파이프 철근 등의 수급차질 등으로 비상이다.

청구 현대산업개발등 업계관계자들은 "수입원자재의 가격상승으로 현금을
주어도 물건을 구할수 없어 내년 착공공사는 공정 스케줄을 처음부터 새로
짜야할 정도"라고 말했다.

< 이동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