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모씨(35.남)씨는 94년 11월 차를 몰고 가다가 도로 위에 술취한 채
횡단보도 위에 누워있던 행인 김모씨를 치고 말았다.

밤이라 전방 시야가 좋지 못했던 데다 도로 위에 사람이 누워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허씨는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현행법에서는 횡단보도 상에서 사고를 냈을 경우 형사처벌토록 하고
있는데 허씨도 형사처벌대상이 되는가?

도로교통법 제1조에서는 "도로교통법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법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교통상의
안전과 원활한 교통확보라는 2가지 목적을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차도는 원칙적으로 차량통행을 위주로 하는 곳이므로 사람의 통행
(횡단)이 제한된다.

하지만 차도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는 사람이 통행을 보장하기 위한
곳으로서 횡단보도 안에서는 사람이 차보다 더 우선적으로 통행할 수
있다.

우리 법에서는 이를 보장하기 위해 "차량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 일시 정지하거나 서행하여 그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고도의 주의의무를 다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제48조)

즉 차도 중 특정부분을 횡단보도로 설정해 보행자가 우선적으로
통행할 수 있도록 하고 운전자에게는 고도의 주의의무를 부과함으로써
보행자의 안전을 도모하는 한편 횡단보도를 제외한 차도의 통행을
제한함으로써 교통의 원활도 함께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허씨 사건의 핵심은 보행자가 횡단보도에 누워 있었던 것이 도로교통법
제48조의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 때"에 해당하는가에 있다.

도로교통법 48조의 "횡단보도 상의 사고"가 되려면 첫째, 피해자가
"보행자"여야 한다.

여기서 보행자란 말그대로 걸어다니는 사람을 뜻한다.

차를 운전하여 횡단보도를 횡단하거나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횡단하는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둘째, 사고장소가 "횡단보도"여야 한다.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할 수 있도록 안전표시로서 표시한
부분이다.

셋째, "통행하고 있는 때"라야 한다.

횡단보도는 사람이 차도를 횡단하기 위해 지정한 곳이므로 보행자가
"통행"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이 횡단보도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운전자에게
법규정상의 의무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판례도 "도로교통법 제48조 제3호의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 때라 함은 사람이 횡단보도에 있는 모든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로를 횡단할 의사로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는 경우에
한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또 "교통사고 피해자가 횡단보도에 엎드려 있었다면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지 아니함이 명백하고,그런 피해자에 대해서는 횡단보도 보행자에 대한
보호의무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허씨는 횡단보도상의 교통사고 책임을 면할 수 있다.

< 도움 = 대한법률구조공단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