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옷을 입는게 아니라 브랜드를 입는다"

"우리는 상품을 파는게 아니라 꿈을 판다"

수입상품을 파는 유통업체들은 턱없이 비싼 값을 받고 상품을 팔면서
이같은 말로 고가판매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브랜드를 입든 꿈을 사든 거기에는 브랜드 가치와 꿈값을 훨씬
웃도는 거품들이 허영심이란 이름으로 끼여 있다.

꿈과 브랜드와 이미지를 내세우는 수입품판매 유통업체들은 엄청난 이익을
챙겨 왔다.

똑같은 브랜드의 제품이라도 선진국보다 우리나라에서 오히려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과 엄청난 유통마진이 이를 잘 입증해 준다.

과소비추방 범국민운동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해외유명 브랜드 의류의 국내
판매가격은 파리 밀라노 뉴욕 등 세계적 패션도시보다 평균 26%이상 높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72만원 하는 조지 아르마니 남성복 경우 우리나라
에서는 5배가 넘는 3백65만원에 판매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아니 베르사체 스웨터는 뉴욕에서 29만원이면 살수 있는 것이 서울에서는
80만원으로 3배가량 비싸다.

한국 소비자들만 "봉"노릇을 해왔다는 얘기다.

옷만 그런게 아니다.

화장품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지난해 소비자보호원의 조사결과 샤넬 랑콤 크리스찬디오르 시세이도
에스터로더 등 5개 수입립스틱은 외국보다 평균 11.6% 비싸게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과 비교하면 무려 32.5%나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수입화장품은 그런데도 연간 1조원가량 판매돼 국내 화장품시장을 30%
가까이 장악하고 있다.

수입품이 이렇게 비싼건 유통마진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수입의류의 경우 수입상 마진이 25~40%에 달한다.

여기에다 백화점이 15~30%의 마진을 더 얹는다.

의류수입상들은 의류가 계절상품이기 때문에 제때 다팔지 못하면 엄청난
재고부담이 생겨 할수없이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재고부담을 소비자가격에 전가시킨다는 것이다.

수입화장품의 경우는 더 심하다.

유통마진이 평균 2백93%, 최고 3백59%에 달한다.

더구나 원가를 알면 소비자는 기가 막힌다.

8만원에서 10만원 사이인 샤넬향수의 원재료비는 고작 판매가의 1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가 1만원짜리 향수를 10만원에 사는 셈이다.

마진이 이렇게 높아 노다지로 인식되다보니 너나 할것 없이 브랜드를
들여 왔다.

지난해말 현재 들어온 수입의류브랜드만 5백80종이다.

올해 다시 세보면 6백개는 족히 넘었을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세계의 이름있다는 의류브랜드가 다들어와 수입품만보면 "세계화"는 이미
완성됐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지난 한햇동안 우리가 수입브랜드를 가져 오는데 지불한 돈은 물려
2조1천억원.

서울에 지하철노선 하나를 새로 건설할수 있는 막대한 규모의 돈이다.

한국이 이처럼 물좋은 최고급시장이 되다보니 로열티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한국법인을 설립해 직접 진출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카르티에 루이뷔통 페라가모 테스토니 샤넬 에르메스가 한국현지법인을
세웠고 구치 프라다 던힐도 현지법인 설립작업을 준비중이다.

수입제품이 한국에서 이처럼 독무대를 연출할주 있도록 도와준건 과다마진
에 눈이 먼 수입상이나 유통업체만은 아니다.

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의 과시소비 현시소비도 이런 토양을 제공했다.

소비자들의 외제선호를 이용한 기가막힌 마케팅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리리코스란 화장품을 수입하는 태평양은 매년 외제수입이 가장 많은
화장품회사로 언론의 지탄을 받아 왔다.

그러나 태평양은 전혀 대응을 하지 않는다.

리리코스는 사실 태평양이 프랑스 샤르트르시에 세운 공장에서 만든 한국
브랜드의 수입화장품이다.

하지만 이를 아는 고객은 거의 없다.

그래서 태평양은 리리코스를 자신들이 해외에서 만든 국산이란 얘기를
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리리코스를 계속 진짜 외제로 알고 사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외제를 선호하는 소비자들로서는 프라이드와 꿈을 살리기 위해 수입품을
구입하는지 모르지만 실상 거품덩어리를 걸치고 허영심만 풀풀 풍기고
다녔던 셈이다.

이런 거품은 IMF 한파 앞에서 깨질수 밖에 없다.

깨지지 않아서도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