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위한 조건이 무리하게 이행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에 예상치 못했던 혼란상이 나타나고 있다.

콜금리에 이어 시중금리의 대표격인 회사채수익률마저 정부가 IMF합의안을
공식발표한 지난 5일 18% 수준에서 9일에는 법적상한선(25%) 수준까지
올랐다.

원.달러환율도 연속 이틀 폭등, 가볍게 1천4백원고지를 넘었다.

주식시장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따라 금융계에서는 정부가 현재의 금융시스템 불안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할 경우 결국 "실세금리 30%, 종합주가지수 3백포인트, 원.달러환율
3천원"의 "신영삼(03)시대"가 도래하지 않느냐는 극단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물론 IMF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게될 경우 통화및 재정긴축에 따라 고금리
행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아무런 사전완충장치 없이 서둘러 9개 종금사의 영업정지를 단행
하면서 전체 종금사의 신인도가 땅에 떨어졌다.

종금업계는 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차입이 어렵게되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급전을 당겨댔고 여기에 부도위기에 직면한 한계기업도 가세,
시중 금리 상승을 부채질했다.

결국 IMF와의 합의에 따른 9개 종금사의 영업정지는 금융시장의 낙오자를
가려낸다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금융시장 전체에 불신감만 높여 놓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기관들간 콜 거래는 물론이고 지급 불능을 우려하는
금융기관들의 몸사리기로 외화거래까지 급격한 위축일로를 걷고 있다.

게다가 그간의 거듭된 부인과 달리 재경원이 2개 시중은행의 폐쇄에 합의한
것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재경원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믿을
상황이 되고 말았다.

IMF 합의사항중 은행에 대한 구조조정 방침은 종금사 영업정지에 이어
금융시장에 제2의 충격을 안겼다.

은행마저 믿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은 금융기관들간에 자금거래를 얼어
붙게 만들어 시중 금리의 급등으로 이어졌다.

더욱이 한라그룹과 고려증권의 부도는 시중의 자금순환고리를 송두리째
흔들면서 금융기관간 불신풍조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회사채의 주된 인수기관인 투신사도 금리인상에 따른 장기수신고 감소로
회사채 투자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장의 전체 자금은 부족하지 않은데도 기업이 도무지 돈을 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연쇄부도 위기감이 가라앉지 않은데다 그간 자금의 과부족문제를
해결했던 종금사 영업이 극도로 위축된 영향이 크다.

금융시장이 이같은 상황으로 내몰리는 데에는 IMF가 내년도 총통화증가율을
9%로 낮추면서 금융기관의 구조조정도 함께 서둘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
이다.

IMF는 더우기 종목당 외국인투자한도를 내년까지 55%로 늘리도록 정부와
합의했다.

굳이 51%만 넘으면 경영권완전 장악이 가능한데 이같은 숫자를 요구한
배경에 대해 재경원조차 속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또 국내기업에 대한 적대적 M&A를 금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IMF는 이를 활성화하기로 했다고 밝히는등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IMF 이행조건에 대해 명확한 정부의 설명이 필요한 대목들이다.

또 부실 금융기관들에 대한 명확한 정리기준의 제시는 물론 금융거래에
대한 인정성을 담보할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요망되는 싯점이다.

IMF로부터 급전을 끌어오기 위해 지나치게 엄격한 요구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신정부 출범과 함께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지적도 높아지고 있다.

< 최승욱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