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제조업에 전념해온 한 유망 중소기업인이 올해초 악화된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를 내게 된 사연을 책으로 펴내 화제다.

대구 성서공단에서 삼풍직물을 운영해온 정철규사장은 최근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국내의 여러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한 "중소기업 왜
쓰러지는지 아십니까"(자유문고간)란 책을 발간했다.

"제가 겪은 가슴아픈 경험담을 통해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과다한
규제와 허울뿐인 지원책, 금융권의 인색한 지원, 투쟁 일변도의 노조활동
등 중소기업의 도산을 부채질하는 요인들을 알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되
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내게 됐습니다"

정사장은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같이 말했다.

삼풍직물은 올해 1월 부도가 나기 전까지 연간 4천만달러 상당의 폴
리에스터를 "삼오엘텍스"란 자체브랜드로 세계 20여개국에 수출해오던
건실한 중소기업이었다.

무역의 날 통산부장관상상을 두차례나 수상하고 산업포장까지 받았던
정사장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지난 95년.

60억원을 투자해 성서공단에 신축한 제2공장에 대해 폐수배출허가가
나지 않은 것.

자체 폐수처리시설은 물론 공단내에 종말폐수처리장까지 설치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당국에서는 염색공장 입주유치제한구역이란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바로 옆 담장 하나 사이의 공장에는 허가가 나면서 삼풍직물은 제외됐던
것.

급기야 정사장은 형사고발까지 당해 구속의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넘겨야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생산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 8월 설립된 노조가 결성 한달만에 파업에
돌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수출 물량이 줄어드는 등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노조는
상여금 지급을 주장하며 수출품 출고를 방해하는 등 강경투쟁으로 일관했다.

결국 지난 1월 삼풍직물은 최종부도라는 종말을 맞게됐고 정사장이
운영하던 삼양섬유등 4개 계열사도 연쇄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회생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철저한 외면으로 일관한
금융권의 비정함도 맛봐야 했다.

정사장은 "현실을 무시한채 책상머리에서만 논의되는 중기 지원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서 "중소기업인들이 희망을 갖고 사업에 전념할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법원에 신청중인 법정관리가 받아들여져 삼풍직물을 꼭
재기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이 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일반 채권자들에게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지요"

정사장이 밝힌 간절한 소망이다.

<박해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