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2개월전인 지난 9월 KDI(한국개발연구원)은
이미 경제위기를 예견하고 신속한 대책마련을 정부에 건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정부는 KDI건의를 묵살하고 조기에 대응책을 수립하는데 실패해
위기를 심화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기아가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던 지난 9월 KDI(한국개발연구원)의
김준경 연구위원과 김준일 연구위원겸 재경원자문관은 ''경제구조조정과
금융안정을 위한 정책과제''라는 내부보고서를 작성, 정부에 제출했던 것.

보고서는 "최근들어 일부 재벌의 연쇄부도로 인해 금융기관의 부실이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어 이를 방치할 경우 경제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일본과 노르웨이 등 북구 3국의 금융
위기는 부동산가격 등 자산가격버블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나 우리의
경우 현재의 금융외환불황이 부동산가격안정에도 불구하고 재벌의 과다차입
관행과 재벌부실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점에서 내용면에서는 오히려 더욱
심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KDI는 대기업의 연쇄부실화와 이에따른 금융외환불안이 직접적으로는
<>79년 2차석유위기와 유사한 수준의 교역조건악화에서 비롯된 채산성저하
<>철강 등 특정산업의 세계경기부진 <>내수경기침체 등의 실물충격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기업재무구조악화와 금융기관과다부실자산 등 구조적
취약성이 표출된 것이라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경제안정과 경쟁력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과 금융기관은 과거 정부의존적 문제해결타성에 젖어 자체적인
구조조정의지가 매우 미흡한 만큼 위기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금융불안 해소차원을 넘어 경제전체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활동의 규칙과 체제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당면한 금융외환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신축적인
통화공급과 환율의 자율변동을 최대한 보장, 환율절하압력을 적시에 수용
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또 자력회생이 가능한 금융기관에는 재정자금에 의한 증자및 해외차입에
대한 정부보증을 실시하며 자력회생가능성이 없는 금융기관은 인수합병이나
가교은행(정리금융기관)을 통한 정상화를 추진할 것과 <>성업공사에 대한
정부출자확대 <>예금보험공사및 해당은행차입과 성업공사채권발행을 통한
부실채권매입재원조성 등을 제시했다.

또 부실대기업 정리와 관련해서는 대출금출자전환을 통한 한시적 은행관리
를 실시하며 부실금융기관은 객관적평가에 따라 회생여부를 결정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생가치가 있는 경우에도 이미 발생한 매몰비용은 책임주의에 입각해
주주와 경영자에게 물려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