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사들이 부도난 해태에 1천5백억원을 협조융자, 회생시키기로 한
것은 그동안의 금융관행에 새로운 획을 긋는 일로 평가되고 있다.

올들어 한국경제를 위기로 몰아간 연쇄부도의 중심에 서 있던 종금사들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기업이 어렵다 싶으면 무차별로 자금을 회수, 기업부도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종금사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추가융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에도 LG종금 등 26개사가 부도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인 교하산업에
1억원씩 지원했다가 교하측의 자구이행 실패가 부도로 연결되면서 무위로
끝난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이미 부도난 대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추가융자에 나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 왜 지원했나 =무엇보다 공멸을 막자는 위기감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이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현실인식에 따른 것이다.

종금사들은 이미 3조6천여억원을 빌려준 기아자동차등의 법정관리와
4천3백억원을 대준 쌍방울그룹의 화의 등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1조9천억원이나 빌려준 해태가 화의나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종금사들이 자칫 부도위기로 몰릴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해태가 살아나지 못하면 3~4개 종금사도 부도날 수 있다"(서울소재 종금사
심사부장)는 것이다.

결국 종금사의 비상 자구책으로 해태에 대한 협조융자가 추진됐다는 얘기다.

협조융자를 주도한 종금사가 대한 나라 항도종금 등 상대적으로 해태에
대한 여신액이 많은 곳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해태 회생을 계기로 연쇄부도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눈덩이처럼 불어
나는 종금사의 부실도 막을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협조융자 배경에는 종금사가 해태의 앞날을 은행권이 종금사들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결정한데 대한 강한 불만도 깔려 있다.

기업의 장래를 결정하는데 종금사도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 해태 정상화 잘 될까 =해태의 정상화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종금사의 협조융자가 과연 제대로 실시될까 하는 점이다.

해태그룹에 대한 여신회수 억제를 결의했을 때도 일부종금사가 변칙적으로
자금을 회수해 결의가 깨진 적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부 종금사는 여전히 추가융자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더욱이 일부 종금사가 추가융자 담보로 제공받기로 한 어음을 변칙적인
자금회수용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대해 종금사들은 해태 주력 5개 계열사에 자금관리단을 파견, 이를
사전차단한다는 방침이다.

해태가 얼마나 강도높은 자구를 실시할지도 해태 정상화에 영향을 줄것으로
보인다.

종금사로부터 추가로 융자받게될 1천5백억원은 1년6개월후에 갚아야 한다.

그러나 상환가능성여부는 전적으로 자구이행 실적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해태는 박건배회장이 지난 5일 종금사 임원회의까지 참석, 강력한 자구
의지를 보인 상태이다.

타금융권의 협조여부도 해태 정상화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은행권은 종금사의 협조융자가 당장 가시화 되면 미처 집행하지 못한
4백53억원의 협조융자를 지원하고 당좌거래 재개에도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증권 보험사 등도 해태여신의 연장에 적극 동의해 주고 있다고 해태측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금융기관이라도 자신의 채권을 먼저 회수하려들 경우 자칫
여신동결및 추가융자 결의가 쉽게 깨질 여지도 없지 않다.

종금사의 해태 살리기가 금융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대기업 연쇄부도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오광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