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홍회장이 29일 전격 퇴진한 것은 안팎에서 거세지는 퇴진압력을 견뎌낼
수없는 상황에 다다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회장은 지난 7월15일 기아그룹에 대한 부도유예협약 적용이후 1백7일간
줄곧 "지금은 물러날때가 아니다"며 저항했으나 더이상 버틸만한 명분도
힘도 잃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지난 22일 기아자동차에 대한 법정관리신청방침을 발표하면서
김회장은 사실상 설 땅을 잃었다.

법정관리는 현경영진의 퇴진을 전제로 한것이기 때문에 김회장으로선 무장
해제를 당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김회장은 그럼에도 법정관리의 부당성을 외치는 직원들과 함께 회사정상화를
위한 강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김회장은 법정관리가 발표된 당일 오후 도교모터쇼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하면서도 당분간 물러날수 없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김회장을 믿고 따라온 직원들은 물론 연쇄부도위기에 몰린 협력
회사들이 김회장 퇴진을 전제로한 조속한 기아정상화를 거론하면서 김회장의
입지는 급속도로 약화됐다.

기아를 제3자에게 넘기지 않고 국민기업으로 정상화시키기 위한 확고한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선 김회장퇴진카드를 쓸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여론이
안에서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협력회사 관계자들은 지난 27일 이같은 의사를 김회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계열사 노조도 김회장퇴진을 공개요구할 태세였다.

단단했던 내부의 디딤돌이 약화되면서 검찰이 지난 26일 김회장내사를
공개, 김회장은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김회장은 검찰이 자신의 개인비리수사여부를 흘리자 자칫하면 40년 기아
인생의 명예마저 송두리째 잃고 쫓겨 나야할 상황이 올지 몰라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기아경영진들도 검찰의 김회장내사가 공개되자 기아처리방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김회장은 28일 밤 주요사장들과 마지막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기아의 제3자인수반대와 전문경영인체제에 의한 국민기업화를
요구하는 선에서 김회장이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기아는 곧바로 임창열 통상산업부장관에게 이같은 김회장의 결정을 전달
하고 29일 그룹 사장단회의의 요식절차를 거쳐 김회장의 퇴진을 확정했다.

< 고광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