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경영정보팀의 나충균(50)이사.

꼭 필요한 업무에만 정보화를 추진하는 "신중론자"다.

"기업들이 불황속에서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너도나도 전산화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념도 모르고 "친구따라 강남 가기식"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많죠"

나이사는 CIO들에게는 허실을 볼 줄 아는 혜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그렇다고 정보화의 필요성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보수적인 제약업계에서는 상당히 빠른 시기인 80년부터 유한양행의
업무전산화작업을 추진해 왔다.

지난 93년부터는 서버및 네트워크장비 유통판매 자회사인 유한씨앤티의
개발본부담당 이사직을 맡고 있다.

그는 2000년대 유한양행을 업계 1위로 도약시키기 위해 정보화분야에서
부지런히 뛰어 왔다.

그러나 결코 급격한 투자확대나 획기적인 정보시스템 개발에 나서지는
않았다.

스텝바이스텝(step by step) 방식으로 회사가 원하는 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필요한 새 장비도 사지 않고 모두 리스(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

유지 보수비용이나 장비 교체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신중론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나이사는 청소년시절 펜싱선수생활을 통해 신중한 그의 성격이 형성됐다고
들려준다.

"펜싱에서는 무심코 앞으로만 나가는 것을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갑자기
발 손 등을 찔릴 수 있죠. 상대방의 칼을 유인해 허를 찌르는 방법을 써야
합니다"

신중하게, 그러나 공격은 재빠르게 해야 한다는 것.

도대표로 체전에 출전해 여러차례 우승트로피를 수상한 적이 있는 검사다운
지적이다.

정부산하 기관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군경력도 냉철한 분석능력과 사태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17년간 유한양행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신중론의 바탕이 되었다.

"최근 BPR(경영혁신)다 ERP(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이다 해서 업계가
시끄럽죠. 그러나 상황을 적확하게 판단, 단계별로 필요한 시스템을 도입
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원상태로 가는데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빨리빨리"와 "앞으로"만을 외치는 국내 정보통신업계에서 나이사의
신중론은 새로운 시각임이 분명하다.

< 박수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