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의 채권금융단이 직접 법정관리를 신청키로 입장을 바꾼 것은 크게
세가지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아가 추진중인 화의가 성사되지 않을 것이 확실한데다 기아그룹 협력업체
의 연쇄도산이 심상치 않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채권단이 나서서 기아사태를
종결지으라는 여론이 어느정도 형성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마디로 채권단이 직접 법정관리를 신청해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을 것이란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채권단은 빠르면 이번주중 주요 채권은행장회의를 소집, 의견을
모은뒤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법정관리신청을 위한 준비서류 등에 대해
세종합동법률사무소로부터 자문을 구해 놓은 상태여서 채권은행장회의의
의결만 얻는다면 의외로 빨리 법정관리를 신청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채권단이 직접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제3자인수 음모시비"가
되살아날수 있는데다 기아그룹노조의 반발도 거셀 것으로 보여 법정관리신청
시기는 다소 유동적이다.

채권단은 현재 기아가 추진중인 화의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화의동의여부에 대한 법원의 조회에서 제일 산업 외환 서울등 주요
채권은행들은 "부동의" 의사를 이미 표시했다.

화의에 미련을 갖고 있던 종금사들도 점차 화의불가입장으로 돌아서고 있다.

한외 신한 제일종금은 이미 법원에 부동의 회신을 보냈고 동양종금도
부동의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다른 채권단들도 주거래인 제일은행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입장이어서
대부분 부동의 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기아 협력업체들의 연쇄도산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으며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의 조업상태도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판단도
채권단의 입장을 선회시킨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10일까지 2백65개의 기아 1차협력업체중 28개가 최종부도를
냈으며 7개사가 화의를 신청했다.

또 아시아자동차의 가동률은 30%대로 떨어졌고 기아자동차도 부품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끝난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채권확보와 예금자보호를 위해
채권단이 단안을 내리라"고 촉구한 것도 채권단으로선 큰 힘이 됐다.

국감에서 제3자인수음모시비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했던 제일은행은 막상
기아사태의 장기화는 곤란하다는 의견을 전해듣고 이제 명분도 얻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만일 채권단이 기아자동차등 기아계열사에 대해 직접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법원은 즉시 화의를 기각하고 법정관리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단 대부분이 법정관리를 원하고 있는 마당에 법원이 굳이 이를 거절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 기아그룹은 채권단의 주도로 정상화와 제3자매각 등의 절차를
거쳐 회생의 길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채권단은 기아자동차만 추가자금지원을 통해 정상화시키고
아시아자동차 등 나머지 계열사는 제3자에게 인수시킨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