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채권단이 추진하던 "채권유예방식의 기아자동차정상화"는 이미 물건너갔다.

화의도 정부및 청와대는 물론 채권단까지 "동의불가"쪽으로 선회하고 있어
성립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오히려 최악의 경우인 "부도후 법정관리"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따라 채권단 운영위원회와 은행장회의가 열리는 오는 26일까지
기아그룹이 "김선홍회장의 경영권포기" 등 특별한 돌파구를 모색하지 않는한
기아사태는 자칫 파국으로 끝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산업은행은 이날 기아특수강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로선 기아의 부도후 법정관리 가능성이 가장 높은 편이다.

우선 정부나 청와대가 화의에 부정적이다.

강경식 부총리는 "앞으로 법원의 결정에 의해 기아그룹이 부도 나더라도
정부는 기아그룹 및 하청업체에 대한 추가지원을 할 수 없다"고 밝혀 부도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인호 청와대경제수석도 지난23일 "기아같은 대기업은 화의가 적절치
않다"고 말해 법정관리를 선호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화의개시에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채권단도 "조건부 화의동의"에서 법정
관리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일부 채권은행들은 <>김회장 사표징구와 기아의 화의조건(신용채권 연 6%,
담보채권 연 9%)이 수정되지 않으면 화의를 받아들일수 없는데다 <>설혹
기아의 화의가 개시됐다 하더라도 추가자금지원이 이뤄지지 않을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기아자동차의 정상화를 기대할수 없으며 <>그럴바에는 차라리
법정관리하에서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 정상화를 모색한뒤 제3자인수를
추진하는 것이 채권회수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들어 법정관리를 검토하고
있다.

만일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결정하게 되면 기아의 화의신청은 즉시 원인
무효가 된다.

그러면 기아계열사는 줄줄이 부도를 면할수 없게 되고 법정관리절차에
들어가 "기아자동차 정상화, 기타 계열사 매각및 정리" 등의 길을 걷게 된다.

물론 기아계열사의 화의가능성이 완전히 물건너갔다고 속단할수는 없다.

채권단 일부에서는 여전히 법정관리보다는 화의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기아부도가 미칠 사회경제적 파장과 은행의 채권회수
등을 고려하면 법정관리보다는 화의가 더 낫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며
"기아가 김회장의 사표제출과 화의조건수정 등의 변화를 보인다면 화의를
받아들일수 있다"고 말했다.

종금사들도 2조원이상의 채권행사가 10년이상 유예되는 법정관리가
이뤄지면 종금사들은 존망의 기로로 내몰리게 된다며 기아와 원만한 타협
아래 화의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문제는 기아의 태도다.

현재와 같이 "회사도 살리고 경영권도 지키겠다"는 두가지 목표를 모두
고수하는한 이미 감정대립 양상으로까지 치달은 정부와 채권단의 "일전불사"
상태를 바꿀수 없어서다.

결국 채권단 운영위원회와 은행장회의가 잇따라 열리는 26일까지 기아가
얼마나 전향된 자세를 보이느냐에 따라 기아는 법정관리나 화의중 한가지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류시열 제일은행장은 이와관련, "채권단은 법정관리와 화의를 선호하는
의견이 반반인것 같다"며 "어떤 식으로든 26일까지 채권단의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하영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