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초 조사발표한 "한국과 대만의 수출입구조분석"에는
가슴아픈 결과가 나온다.

90년대 들어 국제무역에서 대만은 남는 장사를 한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적자행진을 계속했으며 그 주요원인은 바로 국내 기계산업의 낙후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90~96년 사이 대만이 연평균 1백5억달러라는 무역수지 흑자를 구가한
반면 우리나라는 83억달러의 적자에 허덕였다.

특히 지난해 우리경제가 2백4억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낸 반면
대만은 87년의 1백87억달러 이후 최대 규모인 1백47억달러의 흑자를 냈다.

한은은 양국의 명암이 이처럼 엇갈린 것은 결국 각국 기계산업의
수준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중 한국의 수출증가율이 연평균 11.0%로 대만의 8.3%보다
2.7%포인트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자폭이 컸던 것은 결국 수출상품을
만드는 기초기계설비를 대부분 해외수입에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비슷한 시기에 "엔고"라는 최대위기를 맞았으면서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잃지 않았던 비결도 결국은 "모든 산업의 근간"이라는 기계산업의
저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게 업계의 정설이다.

일본과 대만의 교훈은 우리나라도 "사상누각"식의 산업구조를 건실화하기
위해서는 더이상 기계(자본재)산업의 육성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 독일 스위스 대만 등 자본재 선진국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수직.수평적인 협력체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 대만은 어떻게 기계산업의 육성에 성공했을까.

그 비결을 알아본다.

[[ 일본 ]]

세계 최정상의 기술을 자랑하는 일본 기계산업은 이나라 수출물량의
24.0%(95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기여도가 높다.

무역수지에 대한 기여율도 62%이며 94년엔 일반기계부문에서만 7백50억달러
(전체무역흑자는 1천2백9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일본 기계산업의 경쟁력은 한우물을 파온 전문생산업체를 중심으로
민간기업들이 든든한 공조체제를 이루고 여기에 정부의 지원이 적절하게
가세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에서 비롯되고 있다.

송병준 산업연구원 기계산업연 실장은 이러한 저력의 원천을 <>효율적인
기술개발구조 <>안정적 자금조달 구조 <>특허의 효율적 활용 등에서 찾고
있다.

우선 효율적인 기술개발구조 문제.

일본의 경우 연구개발투자에 대한 정부부담율이 20.4%로 미국이나 독일
등보다 낮은 반면 기업간의 공동연구로 이를 보완하고 있다.

송 실장은 그예로 도요타자동차 도요타자동직기제작소 등 도요타그룹
12개사가 연구전문회사인 "근본연구소"를 설립 기초연구를 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일본 기업들은 설비자금의 경우 내부자금과 외부자금의 비율이 각각
77.3%대 22.7%일 정도로 안정적인 자금조달구조를 갖고 있다.

특허의 경우도 양도조건과 사용료를 공개함으로써 이의 효율적 사용이
가능케 했다.

특허권자의 동의를 얻어 벤처기업이 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기술의 공유화를 촉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일본기업은 탄력성있는 가격시스템과 안정적인 기술인력확보로 어지간한
엔고에도 안정적인 국제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 대만 ]]


대만 기계산업의 저력은 잘알려진대로 "개미군단"에서 생기고 있다.

작지만 옹골찬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의 적절한 협력관계를
맺고 세계시장을 겨냥한 우수제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대만의 크고 작은 중소기업은 약 80만개.

이중 절반가량이 기계관련 업체들이다.

이들이 대만 총생산의 90%, 수출물량의 70%를 만들어 낸다.

기계분야 생산액의 절반 이상을 소수의 대기업에 한국과 비교하면 "작은
거인"들이란 말이 무색치않다.

대만 기계업체들은 우리나라처럼 특정대기업에 계열화되기보다는
세계시장을 겨냥, 독자적인 기술개발과 영업을 하고 있는게 특징이다.

완제품 위주의 대기업이 별로 많지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각 분야에서는
세계적 기술력을 갖춘 전문 중소기업들이 대만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과의 협력관계도 모범적이다.

대만의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우리나라처럼 "수직적 도급관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서로의 필요에 따라 원하는 부품을 주고받는 "수평적"관계다.

부품업체들은 협력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동시에 국내 다른 대기업에도
팔고 수출도 한다.

반면 대기업들은 필요로 하는 부품을 수시로 중소기업들에 의뢰해
순발력있게 개발해서 쓰고 있다.

전문화와 계열화의 적절한 조화가 대만 기계산업의 힘인 것이다.

< 이영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