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민교역의 최병재사장(37)은 지난 7월27일 정말 날벼락을 맞았다.

이날 만기어음 1억원을 막기 위해 은행에 돈을 입금했는데 은행측이
그가 입금한 돈으로 어음을 막아주지 않고 대출금을 상계해버린 것이다.

어음막아야 할돈 1억원을 대출금상환으로 돌려버렸으니 돈이 모자랄
수밖에.

너무나 순식간에 당한 일이어서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곧장 은행으로 달려갔다.

제발 부도만은 내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다.

손발이 닳도록 빌었다.

그러나 은행측은 단호했다.

빨리 1억원을 더 가져오라고만 했다.

도대체 한밤중에 어디서 1억원의 돈을 구해온단 말인가.

결국 이날 그는 부도를 당하고 말았다.

며칠뒤 정신을 차리고보니 전날 당한 억울함을 억누를길이 없었다.

참다 못해 그는 서울지검 동부지원에 은행을 상대로 고소장을 냈다.

그럼에도 억울함이 풀리지 않아 신문사를 찾아왔다.

기자를 만나자마자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해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다.

최사장은 부도를 당하던 날 분명히 은행에 전화를 걸어 어음 막을 돈을
넣었으니 잘 처리해달라고 말했단다.

은행측도 그돈으로 어음을 결제하는데 쓰겠다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감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대출상환으로 처리했으니 그리알아라고
통고해왔다는 것.

그는 업체를 지원해주고 이끌어줘야 할 금융기관이 의도적으로 부도를
유인한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가슴을 쳤다.

"도대체 어떻게 키운 회사인데."라고 울먹이다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최사장은 중학교를 나와 어릴때부터 모피제조회사에서 기능공으로 일했다.

10년이상 어두운 공장안에서 땀흘려 일해 근근히 모은 돈으로 경기 기흥에
건평 1백50평규모의 양모피제조업체를 차렸다.

2년전까지만 해도 양모피를 만들어 일본에 수출, 짭짤한 재미를 봤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금운용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은행에서 빌린돈 3억3천만원중 일부가 지난 3월부터 연체됐다.

이때부터 은행측 횡포가 심해졌다.

납품대금으로 받은 어음 1억2천만원으로 대출금을 상환하려했는데도
은행측이 이를 거절했다.

어음은 받지 않겠으니 현금을 가져오라는 거였다.

그러다 끝내 그가 입금한 돈으로 만기어음을 막아주지 않고 대출금으로
상계하고 말았다.

그는 연체이자를 물지 않은 적도 없고 가능한한 성실히 대출금을 갚으려고
노력하는 기업인이었다.

그런데도 은행이 이런 횡포를 부린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연거푸 항변한다.

이에 대해 은행측은 경민교역의 경우 연체가 밀린데다 회생가능성이 없어
약관에 따라 적법하게 부도처리를 했다고 밝혔다.

양측의 의견을 종합해볼 때 분명히 은행측도 규정상으론 잘못이 없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어음을 막겠다고 입금한 돈을 은행 마음대로
상환자금으로 돌려버린 것은 문제가 있다.

부도처리를 할 작정이었으면 왜 애당초부터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얘기를 하면 경민교역측이 그나마 1억원조차 입금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가.

어쨌든 최사장은 은행돈을 떼먹을 생각이 없었음이 확실했다.

때문에 자금을 빼돌리기 보단 경영을 정상화하는데 더 힘을 쏟았다.

그럼에도 은행측은 매정했다.

지금 그는 빠른 시간안에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 보란듯이 은행측에
복수하는 것이 간절한 꿈이라며 이를 악문다.

<중소기업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