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은행".

철저한 다품종 소량방식으로 탄탄한 성장을 거듭하고있는 영림목재(대표
이경호)를 두고 업계에서 일컫는 말이다.

화이트오크 레드오크 하드메이플 호도나무 너도밤나무등 활엽수, 홍송
미송 스기 오리나무등 침엽수에 걸쳐 영림목재에서 다루고있는 나무종류는
1백20여가지에 달한다.

평상시에도 미국 동부 아팔라치아산맥 활엽수의 경우 규격별 등급별로
50가지로 나눠 40만 보드 피트(BF)를 갖춰놓고 있을 정도.

회사의 직제 또한 원목사업부 제재사업부 팔렛사업부 가공사업부 침엽수
사업부 활엽수사업부 건자재사업부등 7개 사업부로 나무에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같은 체제로 고급가구에서부터 인테리어 부엌가구 전원주택 악기까지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대처하고 있다.

특히 팔렛사업부는 완전자동화기기로 하루 1천2백피스를 생산할수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영림목재의 거래선만도 한샘 바로크가구등 전국에 8백여 업체에 달한다.

올해 매출액목표는 지난해보다 10%오른 2백20억원규모.

80억원을 기록했던 91년이후 6년만에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다.

중소기업의 이점을 십분 활용, 다품종소량취급으로 대기업이 뛰어들기
힘든 틈새시장을 장악하고있는 것.

이는 기존 목재업계의 소품종 대량 수입 생산방식으로는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사장이 목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78년.

대학졸업후 동양정밀과 대우전자에서 줄곧 무역업무를 담당해오던 그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내공업형태의 목공소를 재창업, 86년 법인전환후
오늘의 영림목재로 키웠다.

이사장은 가장 어려웠던 고비를 목재가격이 대폭락했던 93년 하반기
당시를 꼽는다.

세계적으로 목재가격이 폭락하면서 목재를 사가기로 한 업자가 약속을
파기하는 가하면 목재를 구입해간 업체마저 반납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발행했던 어음과 목재수입대금을 결제못하는 어려움에
처하기도했다.

이사장은 이같은 상황에서도 물건팔기에 급급하지 않았다.

당시 인천연안 부두에 있던 보세창고를 매각하고 평소 신용을 바탕으로
은행에 지원을 요청하는등 자구책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다.

94년 들어서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국내 목재가 바닥난 상황에서 가격은 회복되고 수요는 몰렸다.

목재가격이 낮았던 시기에 팔지않고 보유하고있던 물품이 날개돋힌듯
팔려나간 것이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나무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목재업에 뛰어들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주위의 도움 덕택으로 지금까지 온것이지요"

이사장은 나무는 종류가 워낙 많고 특성이 제각각이어서 최소한 10년이상
직접 다뤄야 겨우 안목이 생길 정도로 까다로운 분야라고 토로한다.

직원들에게는 "나무와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숙해지라"고 주문한다고.

영림목재는 최근 소프트우드사업강화를 위해 캐나다 밴쿠버에 지사를
설립했다.

고객들에게 현지에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안내하겠다는 것.

이사장은 영림목재를 "작지만 강한 회사"로 만들어 앞으로 목재를
최종제품화, 자체브랜드를 가질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사장은 현재 한국목조건축협회와 한국파렛트협회 감사, 국립기술품질원
목재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서울대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을
밟고있다.

< 신재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