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그룹의 화의신청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금융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진로에 대해 두차례나 부도를 유예해줬음에도 불구, 기어이 법정관리와
크게 다를바 없는 화의를 신청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부도유예협약 미가입기관이면서 이번에 화의신청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보험.리스 등 이른바 제3금융권의 존재도 새삼 부각되고 있다.

한마디로 부도유예협약 자체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셈이다.

부도유예협약은 원래 한시적인 부도유예를 거쳐 정상화가 가능한 기업을
되살리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부도유예협약 적용이후 5개월동안 갖가지 금융지원에도
불구, 화의신청으로 귀결된 것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지적이다.

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는 "결과만 놓고보면 진로에 대한 부도유예협약 적용은
잘못된 것"이라며 "대기업이라고 무조건 협약을 적용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금융계는 앞으로 부도유예협약 적용기업을 선정하는데 있어서
더욱 보수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3금융권도 부도유예협약을 통한 기업정상화에 일정한계를 드리우고 있다.

진로측은 지난 7월 은행및 종금사로부터 2차 부도유예조치를 얻어내면서
제3금융권과 1대 1 접촉을 벌여 여신회수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었다.

그러나 이들 기관이 장래에 대한 불안과 추석을 앞둔 자금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여신회수에 나섬으로써 진로는 속수무책의 지경에 빠졌다.

진로는 "약속위반"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애초 원인제공자가 기업인
만큼 빚을 독촉하는 금융기관을 탓할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이같은 경우는 앞으로 미도파나 기아그룹 계열사에도 재연될 것이 분명해
이들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은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달말 선별정상화 여부가 결정되는 기아그룹은 제3금융권과의 관계를
돈독히 맺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서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문제는 당장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여러차례의 보완에도 불구,협약폐지론 내지는 법적제도화 논의가 수그러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