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경기가 실종됐다.

추석이 일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유통업체에 이르기
까지 모두가 우울하기만 하다.

특히 대기업의 잇단 부도로 은행 증권 종합금융 보험회사 등 금융기관들의
추석분위기는 무겁다.

시장이나 상가는 썰렁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근로자들이 추석 상여금은 커녕 임금도 받지 못해 올 귀향길을
포기해야할 지경이다.

명예퇴직 등으로 실직한 사람들은 비탄에 잠겨 일찌감치 추석귀향을
포기해 버렸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 양로원 보육원 등을 찾는 독지가들의 발길도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 사라진 추석상여금 =이번 추석때 월급과 보너스를 제때 지급받지 못한
근로자는 전국적으로 10만명이 넘는다.

8월말 현재 1천4백48개 사업체에서 8만5천여명의 각종 임금 2천9백27억원이
체불됐다.

이는 46개 지방노동관서에 신고된 것만 더한 수치이다.

신고되지 않은 것까지 더하면 체불임금은 4천억원에 달한다.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인 창원공업의 경우 8월분 월급과 상여금 1백%(생산직)
~2백%(관리직)가 전액 미지급됐다.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근로자 김성일씨(35)는 "7월분 월급 50%를 받은
이후 8월분 월급, 여름휴가비, 상여금 등을 받지 못했다.

올 추석에는 고향(전남 담양)에 못내려갈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대구경영자협회에 따르면 대구지역에서 추석상여금을 주기로 한 업체는
지난해 44%에서 올해 27%로 줄었다.

평균지급액수도 20%나 감소했다.

부산지역업체들은 절반정도가 2만원이하의 추석선물을 제공하는데 그쳤다.

광주지역은 아시아자동차의 경우 7천여명의 근로자가 상여금 96억원을
포함, 모두 4백43억원의 임금이 체불된 것 외에 1백21개 업체 2천5백여명의
근로자들도 82억원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경기도 안산공단 전동치솔 제조업체 에센시아에서 근무하는 이명구(33)씨는
"지난해 추석에는 상여금에다 갈비세트와 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는데 올해는
회사에서 아무것도 줄 형편이 안된다"고 밝혔다.

<> 시장.상가 =재래시장 백화점 전문상가 등의 상인들은 그야말로
울상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매출부진을 추석을 기해 만회해보려고 물건을 들여놨다가
오히려 재고만 더 쌓이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장사가 안되는 추석은 평생 처음입니다.

지난해만해도 하루 1백여대 지방차량이 새벽시장에 나와 옷을 떼갔지만
요즘은 50여대에 불과해요.

올해내내 매출이 20%가량 줄어 이번 추석때 만회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것도 어렵게 됐어요"(남대문시장 천일상사 조한영씨)

제수용품 선물 등 대표적인 추석대목 상품을 파는 상가들의 경기체감은
거의 "한파"에 가깝다.

가뜩이나 재고가 쌓여가는데 추석이랍시고 물건만 더 들여와 이제 물건을
내다버려야 할 형편이다.

일부 점포주인들은 물건을 예년보다 20%씩 줄여 들이는가 하면 일찍 문을
닫고 고향으로 떠나버리고 있다.

동대문시장에서 제수용품을 파는 김선갑(45)씨는 "한몫은 커녕 자리값도
못낼 지경이다.

정부는 이런 시장상인들의 고통을 알고나 있는 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사회복지시설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들은 더욱 우울한 추석을 맞고
있다.

경기도 이천 한나원 박양조 원장은 "올해같은 추석은 처음이요.

과일구경도 못할 것 같아요.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며 덜 외롭겠는데..."라며 메말라가는 인정을 그리워
했다.

경기도 홀트일산복지타운의 최영대원장은 "이맘때면 기업들이 경쟁하듯이
찾아왔었는데 올해는 어느 회사에서도 전화 한통화없다.

기가 죽은 원생들을 보기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 사회1부.산업2부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