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정부가 특융대신 현물출자를 통해 제일은행의 경영을 정상화시킨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제일은행은 "환영반 걱정반"의 분위기다.

무이자 국채를 발행해 주식과 맞바꾸는 식의 현물출자를 할 경우 정부의
직할통치구역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금융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제일은행을 국책은행화한뒤 내년초쯤
다른 은행과 합병시키려 한다는 시나리오가 확산돼가고 있다.

제일은 그러나 증자를 안할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도
못내고있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 "제일은행의 운명은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며 "자구를 충실히 이행하게 되면 시중은행으로서 자력갱생을
도모할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합병대상이 될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가 제일은행에 대해 경영권 포기각서와 인원 감축
등에 대한 노조동의서를 요구한 것은 향후 금융산업의 구조개편과 관련,
음미할만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제일은행은 정부의 인위적인 조정에 의해 타은행에 합병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제일이 이지경까지 다다르게 된 배경은 부실여신 과다에 따른 자본금의
대폭적인 잠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해 제일은행의 적자는 자기자본(1조8천5백억원)의 절반이 넘는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자기자본비율(BIS)이 최저 8%선인 만큼 올해내로
자본잠식분 1조원을 증자를 통해 벌충해야 할 입장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자기자본비율과 연계돼 있는 <>동일인 여신한도
<>동일계열 여신한도 <>유가증권 투자한도 등의 비율이 대폭 하락, 은행
경영뿐만 아니라 제일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있는 기업들에 치명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정부는 이에 따라 다양한 증자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우선 현재 상법상 납입자본금의 25%까지 발행이 허용돼있는 무의결권
우선주 2천50억원을 인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다 제일이 자구를 통해 연말까지 1~2천억원의 자금을 마련하면
나머지금액은 보통주를 인수하거나 후순위채를 발행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하고 있다.

그러나 자구가 시원치않고 전망도 극히 불투명하다고 판단할 때는 아예
전액을 보통주로 인수, 합병을 전제로 국유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제일은행의 운명은 자구에 달려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류시열 행장이 흔쾌히 경영권 포기각서를 제출하겠다고 나서는 이유도
이같은 기류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산업은행의 경영혁신 발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잘 알고 있다"며 "은행 존폐의 기로에서 자구이행말고는 더이상의
대안이 없다"고 긴장감을 감추지 않았다.

<조일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