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기아사태 와중에 기업간 인수합병(M&A)에 대한 심사기준
을 강화키로 해 기아그룹이 긴장하고 있다.

공정위는 현행 기업결합심사기준을 대폭 강화해 특정분야에서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40%를 넘거나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60%를 넘을 경우
해당기업간의 인수합병을 규제한다는 고시를 다음주중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본지 11일자 3면 참조 >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50%이상이거나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이 70%를 넘을 경우에만 인수합병을 규제토록 돼있다.

공정위의 이같은 방침이 흘러나오자 기아그룹은 기아를 특정 기업에
넘기려는 것 아니냐며 진위파악에 나서는등 크게 긴장하는 모습이다.

만약 채권단이 기아그룹을 제3자에게 인수시킬 경우 마켓셰어가 40%를 훨씬
넘는 현대나 3사 시장점유율 60%에 해당되는 대우는 인수전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7월말 현재 시장점유율은 46.5%, 3사의 셰어는 88.9%다.

그럴 경우 기아를 인수할수 있는 곳은 삼성그룹과 LG그룹 두곳만 남게 된다.

그러나 LG는 이미 수차례 걸쳐 기아를 인수할 뜻이 없다는 것을 밝혀온
만큼 삼성그룹만이 기아를 인수할수 있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수 있다는
것이다.

기아그룹은 이것도 "시나리오"의 하나가 아니냐며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공정거래법에는 인수합병 대상기업이 부실기업이나 산업합리화
업체일 경우는 예외로 인정받게 돼 있으나 기아그룹이 부실기업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지 아니면 경쟁력강화차원의 인수대상기업이 될지는 아직 공정위의
판단이 서있지 않다.

따라서 기아가 3자 인수 대상기업으로 떠오를 경우 이 기준자체는 물론
법규정 자체의 논란이 심각해질 우려가 높다.

만약 기아그룹이 회생하고 적대적 M&A전이 벌어졌다면 현대나 대우는
여기서 제외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대나 대우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현대 대우는 줄곧 "기아의 회생이 최우선이지만 만약 3자에 인수될 경우
라도 결코 삼성에는 넘어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현대 대우 모두 삼성이 기아를 인수할 경우 자동차시장에서 1위자리를
내줄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현대는 특히 매출 13조원의 기아그룹을 삼성이 가지게 되면 향후 10년간은
재계순위 2위자리를 면치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기아를 아예 넘볼수 없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정부가 이미
각본을 짜 놓은 것이 아니냐는게 기존업계의 입장이다.

구본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대사가 "현대자동차나 대우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할 경우 미국및 유럽연합(EU)등과 통상마찰을 빚을수
있다"는 보고서를 재경원에 긴급히 제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라는게 재계의 의심이다.

정부가 9월 정기국회에 제출키로한 가칭 구조조정법도 그런 경우다.

구조조정법은 재계가 모두 원하고 있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려고 계열사를 매각해도 매각대금의 대부분을 세금
으로 내버려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고 있어서다.

당장 계열사의 대량 매각에 나선 기아도 입장은 마찬가지다.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자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시기가 문제다.

재계는 기아사태가 벌어지면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는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처럼 기아사태에 영향을 줄수 있는 법령을 잇따라 개정
하면서도 정작 기아사태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아 부도후 법정관리"라는 내부 시나리오가 언론에 포착됐어도 "폐기
처리된 내부용"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아직도 "불개입"을 천명하고 있다.

과연 시나리오는 없는 것일까.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