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시장내 아트프라자 1층에서 숙녀복점포 "인터뷰"를 운영하는
전계상사장(41).

동대문시장의 현대화를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아트프라자의 터줏대감
이다.

한때 점포당 권리금만도 수억원대를 홋가했던 아트프라자의 "신화"는
전사장을 포함한 상인들이 숨은 노력이 밑거름이 됐다.

상가개장 전부터 지방을 순회하며 홍보전단을 돌리거나 쇼핑온 지방고객을
자신들의 승용차로 실어나르는 등 상가활성화를 위해 상인들이 똘똘 뭉쳤던
것.

전사장은 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 그러니까 26살에 구두방 점원생활을 때려치우고
옷장사를 시작했다.

처음 자리를 튼 곳은 신평화시장.

운도 따라줬다.

그가 신평화시장에 뛰어든 80년대 초반은 교복자율화조치등 의류경기가
최대호황을 누릴 때.

하지만 그가 지난 15년간 별 부침없이 옷장사를 하고 시장에서 기반을
잡을수 있었던데는 무엇보다 타고난 장사꾼의 감각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캐주얼신사복에서 숙녀복으로 업종을 바꾸거나 유행을 포착해 남보다
한발앞서 새로운 옷들을 내놓았다.

그는 지금도 시간이 날때마다 명동 이태원 등을 둘러보며 패션동향을 체크
한다.

또 원단구입에서부터 제품주문까지 옷만드는 일은 자신이 일일이 챙긴다.

불량품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자칫하면 한철장사를 망칠만한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야심껏 내놓은 옷들이 반응을 못얻게 되면 고스란히 "땡처리"로 넘겨야
한다.

그럴 경우 원단값도 건지기 힘들다.

지방 소매상들에게 팔았다고 해도 얼마나 되돌아올런지 모른다.

전사장은 "시장에서 장사할려면 얼굴이 생명"이라며 "적어도 동대문안에서는
내 얼굴이 보증수표가 될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트프라자 1층 상우회장직을 떠맡아 상가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상가가 살아야 상인이 살수 있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손성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