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이 달라지고 있다.

부실기업 처리에 있어 예전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선 금융당국의 눈치를 전혀 살피지 않는다는 것이고 절차는 뒷말이 없게
최대한 투명케한다는 점이다.

30일 기아그룹 채권단 대표자회의에서 은행장들이 보여준 모습은 가히
독을 품은 듯한 모습이었다.

부실경영 책임을 강도높게 꾸짖는 것은 물론이고 자구계획의 비현실성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회의에 배석했던 제일은행 권우하 상무는 "당초 예상하기로는 2시간이면
회의가 끝날줄 알았다"며 "은행장들의 강경한 태도에 허를 찔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조흥은행 위성복 상무도 "기아경영진이 국민기업이라는 등의 표현을 써가며
언론플레이나 일삼는데 대한 은행장들의 불만이 극도로 고조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표순기 서울은행장 대행은 "경영을 그런 식으로 부실하게
해놓고도 구체적인 데이터없이 설명하는 것을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은행장들의 달라진 태도는 여러가지로 해석된다.

진로 대농 때와는 달리 김선홍 회장의 경우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이기
때문에 경영실패를 엄중히 문책하겠다는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근들어 대거 발생한 부도로 인해 은행경영마저 위태로워
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부실한데도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질질 끌려다닐 경우 기업도 망하고 은행도
망하는 사태가 올수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소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치겠다는 심사지만 한보사태이후
달라진 금융환경도 은행장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실제 은행장들은 부실기업 처리에서 은행감독원 재정경제원 등 당국과
사전에 전혀 조율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주요 채권은행장끼리의 개별모임을
통해 처리방향을 정하는 등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영주에 대해선 "대기업인데 설마 그렇게까지"와 같은 안이한 자세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성태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