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조직내에 공급되는 혈액의 양은 헤모글로빈에 의해 조절된다는 가설이
새로 제기됐다.

사이언스지 최근호에 따르면 미국 듀크대 메디컬센터의 조너선 스태믈러
박사는 헤모글로빈 자체가 혈관의 수축.확장을 유도, 조직내의 혈액공급량을
조절한다는 이론을 내놨다.

이는 각종 심장 및 혈액질환 치료제는 물론 인공혈액개발 등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란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혈액의 흐름은 이제까지 동맥근육내의 어떤 신호에 따라 동맥이
좁혀지거나 넓혀짐으로써 조절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스태믈러 박사의 이론은 비교적 간단하다.

특정 조직내에 산소가 부족하면 헤모글로빈이 능동적으로 그 부위의
동맥을 확장시켜 혈액을 많이 돌게 하고 산소가 풍부하면 동맥을 수축시켜
혈액흐름을 늦춘다는 것이다.

혈액흐름에 관한 헤모글로빈의 새로운 역할은 질소(NO)가스가 인체내
신호의 전달 및 수용체계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명받았다.

스태믈러 박사에 따르면 좌심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헤모글로빈에는 4개의
산소분자가 붙어있다.

대동맥을 거쳐 소동맥에 이른 헤모글로빈은 모세혈관에 들어가기 전에
2개의 산소분자를 떨군다.

적혈구는 모세혈관속에서 1개의 산소분자를 더 내놓는다.

그러나 정맥을 통해 허파로 되돌아오는 헤모글로빈에는 대개 2~3개의
산소분자가 붙어있다.

스태믈러 박사는 이 상식에 맞지 않는 현상을 마취된 동물의 헤모글로빈에
질소가 달라붙는 정도를 측정, 새로운 모델을 개발했다.

그의 모델에 의하면 헤모글로빈은 2~3개의 산소분자를 달고 허파로 되돌아
온다.

허파속에서 산소분자를 보충받는 동시에 미량의 산화질소를 받아들여
헤모글로빈에 쉬 달라붙고 떨어지는 SNO란 특별한 형태로 저장한다.

이 헤모글로빈은 소동맥에 이르러 주변조직의 산소량을 감지한다.

조직내 산소가 부족하면 헤모글로빈은 2개의 산소분자를 내놓는다.

동시에 SNO가 튀어나오는데 이것이 혈관을 확장하라는 신호가 된다는
것이다.

두개의 산소분자를 잃은 헤모글로빈은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는데 여기서
한개의 산소분자를 조직세포에 공급한다.

그리고 소동맥과 맞닿은 모세혈관을 타고 가 처음 떨어뜨린 1~2개의 산소
분자와 함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후 정맥을 거쳐 심장으로 되돌아간다.

만약 소동맥에 산소가 충분하다면 적혈구에 붙어있는 산소분자와 SNO가
떨어지지 않으며 헤모글로빈의 철이 혈관벽에 붙은 산화질소를 흡수, 혈관이
수축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헤모글로빈을 혈액흐름의 능동적 인자로 인정하는 것이며 많은
학자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다.

또 이 가설을 응용, SNO가 풍부한 헤모글로빈을 투여함으로써 순환기
계통의 각종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스태믈러 박사와 듀크대 메디컬센터는 SNO헤모글로빈을 하나의 의약품으로
환자에 투여하는 임상실험을 벌이고 있는데 이 헤모글로빈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인공혈액의 산소전달시스템으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