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해법이 다시 꼬이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조가 단체협약을 다른 기업수준으로 수정하라는 채권단의
요구를 28일 단호히 거절함에 따라 기아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기아의 단체협약 개정 문제는 채권단이 요구한 핵심 자구안의 하나라는
점을 감안할때 자구계획 마련은 물론 30일 채권단 회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아그룹은 이미 채권단이 자구계획에 포함시킬 것을 강력히 요구해온
사안 가운데 아시아자동차 매각건을 제외하고는 <>임원을 비롯한 인력감축폭
확대 <>계열사및 임원보유주식 담보제출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 대부분을
수용키로 했었다.

이런 기아그룹의 입장에 대해 채권단도 "대체로 내놓을 것은 다 내놓았다"
고 수긍하는 분위기였으며 아시아자동차 매각문제도 돈만 받을수 있다면
구태여 팔아 치워야 한다고 강권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노사가 노사관계 개혁안에 잠정 합의했다는 소식이 흘러 나오면서
채권단의 관심은 자구계획의 내용보다는 그 실행시기에 관심을 집중시키던
터였다.

이러던 차에 노조가 <>3년간 무분규 <>인력합리화 <>단체협약 갱신 등의
노사간 잠정합의안을 완전히 거부키로 한 것은 기아 회생에 심각한 위협이
될수밖에 없다.

잠정합의안이 이날 각사 조합 대의원대회및 설명회에서 거부된 것은 노조가
이 개혁방안이 <>노조의 자율적인 교섭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고 <>노동계
첫 사례로 앞으로 전체 노동운동에 심각한 위협이 될수 있으며 <>채권단이
노사관계 개혁을 요구하는 것 자체에 무언가 배경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이 가운데 채권단의 요구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기아자동차 노조 관계자는 "채권만 회수하면 되는 채권단이 문제의 본질
과는 다른 노조 약화를 자구계획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갖지 않을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조가 내세우고 있는 의혹은 대체로 두가지다.

첫번째는 채권단이 기아그룹을 제3자에 인수시키기 위한 전단계로 노조의
"다이어트"를 계산에 넣었다는 것이다.

사실 다른 기업이 기아를 인수하려면 노조는 가장 큰 짐이 될수밖에 없다.

이미 드러난 단체협약의 맹점들이 경영권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
이다.

따라서 노조측은 스스로도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채권단이 노사
관계 개혁을 자구계획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한 것이 못내 의심스럽다는 주장
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기아 노조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기아가 부도위기에
내몰린 것이 마치 "강성 노조"만의 잘못으로 몰고 가면서 인원삭감 단체
협약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특정 기업의 기아인수를 기정사실화
시키려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타 기업에 넘기기 위해 근로자들의 저항과 노조를 무력화시켜 인수를
손쉽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노조의 또다른 의심은 정부가 기아사태를 계기로 전반적인 노동운동의
약화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잇단 부도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은행권에게 특융의 조건으로
기아의 자구계획에 이같은 개혁안을 포함시키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기아자동차 노조의 자구계획안 거부는 채권은행단은 물론 정부와
일반인들에게까지 결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노조측의 거부 배경이야 어떻든 강성노조가 기아자동차 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는게 일반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아직도 기아노조가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타결책을
꼬이게 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진 셈이다.

채권단회의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터져나온 노조의 노사관계 개혁안 전면
거부는 기아사태 해결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