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의 부도유예 적용은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다.

기아그룹이 제3자 인수방식으로 처리되거나 기아자동차만 살아남으면
그것으로 구조조정은 완전히 본궤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기아그룹이 통째로 살아남는다해도 이미 시동이 걸린 구조조정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정부는 지금 가칭 "구조조정법"을 만들고 있다.

오는 9월이면 국회를 통과해 시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법이 물론 자동차산업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건전한 구조조정을 꾀하는 기업들이 기업을 팔거나 사들이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각종 규제를 풀어주려는 것이다.

기업인수합병(M&A)이 보다 활발히 진행될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별개의 얘기지만 한동안 삼성의 보고서가 문제가 되고 기아사태에
시나리오설이 나돌고 있는 것도 삼성의 보고서가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부는 곧 구조조정법을 완성시킨다는 계획이다.

구조조정법은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에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한계 상황의 업체, 경영권 방어가 어려운 업체는 적대적이건 우호적이건
M&A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은 삼성이다.

삼성은 내년이면 연간 8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다.

그러나 이런 생산능력으론 자동차업체로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자동차산업은 차종당 기본 생산능력이 30만대를 넘어야하는 스케일 메리트
산업이어서다.

물론 삼성이라고 생산능력 확충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2년까지 50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2010년까지 1백50만대로 늘린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그러나 그게 만만치가 않다.

국내 자동차 설비는 이미 과잉상태다.

기존 업체들도 예정돼 있던 국내설비투자 계획을 덮어버리고 해외생산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지금 구도대로라면 아무리 자체 계획이라해도 증설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이 다른 업체에 관심이 많은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그토록 삼성과 신경전을 벌이던 기아그룹, 인수협상설이
나돌던 쌍용자동차는 변화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삼성은 물론 삼성의 급성장을 우려하는 현대나 대우가 가세해
혼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기아그룹이나 쌍용자동차 모두 처절한 자구노력 끝에 정상화는 물론
아주 건실한 기업으로 거듭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면 기아나 쌍용 대신 삼성이 골치아파진다.

이래저래 구조조정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진다.

국내 업체들간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빠르면 98년,
늦어도 99년정도가 될 것이라는게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그동안 자동차업계는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신경을 쓰기가
어렵다.

경영권 방어와 견제,인수 소모전이 불가피해서다.

따라서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 가운데 국내업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본차는 99년 수입선다변화
제도 해제와 함께 본격적인 국내 상륙전에 나서게 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를 비롯한 관련 전문기관들은 2000년이후 수입차가
국내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선이라고 전망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일본차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만큼 미국이나 유럽차에 비길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내수시장의 성장은 정체돼 있는데 이 시장의 20%를 내준다면 국내업체들의
공급과잉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게다가 구조조정 전쟁에 시달리다 몸단속을 소홀히하게 되면 빼앗기는
시장은 더 커진다.

경쟁력 약화는 해외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될 것이다.

물론 구조조정 과정에서 각 기업들이 보다 단단해 질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이 가능성이 높을까.

구조조정 이후가 더 불안한 이유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