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경기불황이 지속되면 받아야 할 외상값이 계속 늘어난다.

때문에 중소기업사장들은 몹시 고민한다.

빨리 외상값을 받아야 은행결제를 할수 있을텐데..

이러다가 받아 놓은 어음이 덜컥 부도맞는게 아닐까.

이런 불안을 떨치기 위해 사장들은 이른 아침부터 어음할인할 곳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누구하나 비상장업체의 장기어음을 받아 주지 않는다.

외상을 현금화하지 못해 갈수록 지쳐만 간다.

드디어 자금난을 이겨내는 방안은 급전을 빌리는 방법밖에 없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오늘은 한번 마음을 돌려보자.

바깥으로만 나가지 말고 대신 회사안을 다시 돌아보자.

먼저 창고와 매장을 살펴보라.

자재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반입돼 있지 않은지, 공정 사이에 반제품이
곳곳에 차 있지나 않은지 훑어보라.

무엇보다 제조업체로선 재고가 총자산의 20%를 넘어서 있으면 위험하다.

얼마전 부도를 낸 구리제품업체인 동영금속도 캐고보면 재고과다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의 구리값이 오르면 보통 2개월 뒤엔 국내 동가격도
따라 오른다.

그동안 동선이나 동파이프를 만드는 업체들이 이런 사이클을 노려
동스크랩을 확보해 놨다가 짭짤한 재미를 봐왔다.

동영금속의 김명원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을 움켜쥐고 있으면 돈이 된다는 생각에 굳어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낭패를 안겨 줬다.

동관시장의 과당 경쟁으로 외상값이 쌓여 갔기 때문.

결국 건설업체로부터 어음부도를 맞으면서 스크랩재고를 처분할 기회조차
놓쳤다.

그야말로 재고관리의 ABC를 모른 탓에 자금난에 휩싸여 부도를 당하고
말았다.

재고과다란 참 묘한 특성을 지녔다.

암증세와 비슷하다.

초기엔 좀체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치료 기회를 놓친채 쓰러지게 만든다.

따라서 이것은 정기적으로 점검을 하는게 상책.

현장에서 재고과다를 스스로 예방하는 방법이 없을까.

물론 있다.

재고를 분석해 보면 서너개 품목이 전체재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전체 재고품목수의 20%가 전체 재고액의 80%를
차지한다.

이는 제조업체든 유통업체든 묘하게도 비슷하다.

따라서 전체 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너개 품목을 중점감시 대상품목
으로 정하고 재고분이 과다하면 곧장 처분하면 된다.

이를 자금관리법에서 ABC기법이라고 부른다.

교과서상 자금난의 원인으론 손실발생 자기자본부족 고정자산과다등을
먼저 든다.

그러나 불경기땐 상황이 다르다.

재고과다와 외상누적이 가장 심각한 질병이 된다.

이들은 돈흐름을 막아버린다.

적정재고는 "돈"이지만 과다재고는 "병"이다.

지금 당장 창고와 매장으로 내려가 재고가 적정한지 꼼꼼히 따져 보자.

< 이치구 중소기업 전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