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총리가 금융감독기관장들과 은행장 협회장들을 소집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금융에 관한 문제는 그동안 경제 담당 부총리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왔다는
데서 총리가 금융문제에 직접 개입하기에 이른 상황은 여러모로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됐다.

고총리가 직접 금융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대기업들이 잇단 부도사태에
빠지면서 금융대란설이 확대되는 등 금융문제가 국정의 중요과제로 등장해
있다는 반증이라고도 할수 있다.

대통령이 부도방지 협약의 개정을 거론하는 등 통치권의 관심이 큰 만큼
총리로서도 무언가 발언해야할 때가 왔다는 총리실의 판단도 깔려 있다.

그러나 금융계 일각에서는 최근의 금융시장 상황에 대해 재경원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위층의 불만이 이런 형식으로 표출된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한은 독립 문제 등 금융개혁을 둘러싸고 재경원이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
하다는 항간의 비난도 총리실의 금융 개입을 불러온 것으로 분석된다.

고총리는 오는 6월5일의 모임에서 특별한 조치를 내놓기 보다는 부도협약
등 금융계의 현안에 대해 청취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재경원의 직할 통치 구역인 금융에 관해 총리가 직접 의견청취에
나선 것 자체가 재경원으로서는 여간 곤란한 상황이 아닌 만큼 이번 행사
자체가 또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금개위가 금융감독위원회를 총리실 산하로 두는 방안을
내놓은 것도 이번 총리의 금융계 행차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고총리로서는 이번 행차를 통해서 금감위의 총리실 설치를 기정사실화하는
수순을 밟아 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 감독체계 개편 문제가 이제 본격적인 정부내 갈등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