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잠원동 뉴코아그룹 사무실에는 거래업체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뉴코아그룹이 은행권에 1천6백억원의 자금 대출을 요청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확인하기 위한 전화였다.

뉴코아는 은행권에 대한 대출요청은 거래업체의 어음결제기일을 당겨주기
위한 일반적인 대출요청이지 부도위기를 막기위한 긴급 구제자금 요청이
아니라고 즉각 해명했다.

또 부도방지협약의 적용을 신청할 계획도 전혀 없다고 못박았다.

거래업체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뉴코아가 회사측의 주장대로 현재의 난관을 뚫고 유통전문기업으로 계속
커 나갈수 있을지, 아니면 어려운 길을 가게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유통업계의 경영환경이 전에없이 악화됐다는 점이다.

뉴코아 외에도 상당수 지방백화점들이 현재 대기업그룹에 넘어갈 것이란
소문에 휩싸여 있다.

청주 진로백화점은 이미 부도를 냈다.

같은 계열의 아크리스도 사실상의 부도상태다.

국내 대표적 백화점중 하나인 미도파까지 앞날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정도로 유통업계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급속히 빨려들어가고
있다.

유통업계의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이다.

유통업계의 지각변동은 사실 2~3년전부터 예고돼 왔다.

할인점등 신업태의 등장과 대기업그룹의 잇단 신규참여로 경쟁이 치열해져
구조재편은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됐다.

여기에 경기침체가 또하나의 변수로 작용해 구조재편을 앞당기고 있다는
설명이다.

할인점의 등장은 대기업의 유통업 신규참여와 맞물려 유통업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 왔다.

백화점들은 잇달아 세일을 실시했으며 이는 곧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미도파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이 90년대 들어 처음으로
한자릿수 증가에 머물렀다.

상황은 올들어 더욱 악화되면서 지난 4월 세일 때는 절대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감소했다.

백화점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동네 슈퍼와 같은 소형점포나 재래시장 상가는 존립기반을 위협받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멍가게는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할인점도 예외는 아니다.

까르푸(프랑스) 마크로(네덜란드)등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운 외국업체들의
진출로 국내업체들은 고객확보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인점들이 최근들어 최저가보상제를 도입하는등 차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쟁이 어느정도 치열해졌는지는 신도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구 30만명인 일산의 경우 현재 백화점 2개,할인점 4개의 대형점포가
영업중이다.

내년이면 백화점이 5개,할인점이 5개로 늘어난다.

인구 40만명인 분당도 현재 5개의 백화점과 4개의 할인점이 들어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백화점은 인구 30만명, 할인점은 10만명에 하나의 점포가 적당하다는게
유통업계의 정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경쟁이 어느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있다.

신규점포 개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삼성 대우 동부등 15개 그룹이 유통업 신규참여를
선언했다.

30대그룹중 21개 그룹이 유통업에 뛰어들었거나 참여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2000년이면 전국에 백화점이 2백여개,할인점이 1백90여개로 지금보다 2~3배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질 것은 불문가지다.

결국 유통업계의 출혈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져 부도업체가 속출하면서 "살아
남는 자"에 의한 기업인수합병(M&A)은 예정된 수순이라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향후 1년내에 유통업계의 밑그림이 다시 그려질 것이란게 유통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유통산업연구소 서영철부장은 "경쟁의 격화로 유통업의 경쟁력은
높아지겠지만 이로인해 업체별 경영수지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빠르면
연내에 업계 구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편과정에서 점포차별화에 실패하거나 치밀한 중장기전략 없이
유통업에 뛰어든 업체는 당장 경영난에 빠질 것"으로 내다봤다.

< 강창동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