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한만도 못하다".

지난 21일부터 발효된 "부도방지협약"에 대한 금융권의 평가다.

직접 타격을 받는 2금융권뿐만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협약을
주도한 은행, 그리고 혜택대상인 기업체들로부터 볼멘 소리가 터져나온다.

특정기업(이번에는 진로)의 부도는 막을지 몰라도 다른 기업들이 부도
파편을 맞을 거라는 우려에서다.

부도를 막기 위한 협약이 부도를 양산하는 아이러니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한보.삼미부도 이후 땅에 떨어진 대외신인도를 회복하고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비상조치로 취해진"(재정경제원 관계자)
부도방지협약이 출발부터 삐그덕거리고 있는 셈이다.

협약은 날 때부터 한계를 갖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진로부도"를 막기에 급급해 "보이지 않는 손"의 원격
조정에 따라 힘으로 밀어붙였던게 애시당초 잘못이었다.

제2금융권은 의사결정에 제외된 채 "약속"을 지키라는 통보만 받았다.

규정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기관들이 일부(건별)부도를 맞은뒤 소송을 제기하면
"협약"이 질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시간벌기에는 성공할지는 몰라도 그 부담은
두고두고 남을 거라는 얘기다.

"느닷없이 나타난"(증권거래소관계자) 일부부도는 증시에도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부도는 부돈데 당좌거래가 정지되는 통상의 부도와 다른 일부부도를 낸
진로의 처리 때문이다.

거래소는 1부종목인 진로를 관리종목으로 지정하지 않고 2부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협약의 보호로 부도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명백해진 진로그룹
주식은 여전히 하한가행진을 벗어나지 못해 협약이 성공적이지 못함을
증명하는 잔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혜와 관치금융이란 멍에를 벗을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산업합리화업체
로 지정하든가 법정관리에 넘기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었을 거라는 지적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금융기관들간의 책임미루기 때문에 애꿎은 기업만 멍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홍찬선 < 증권부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4일자).